며칠 머물다 갈 여행지로서가 아니라,
이곳에 거주할 거주지로 그라나다에 살다보면,
세상 어느 도시나 어느 곳이나 그렇듯,
여행자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숨겨진 보석같은 곳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알바이신의 좁은 골목에 익숙해지고, 오며 가며 인사하는 상인들의 얼굴도 낯익을 때 쯤,
하나 둘 숨겨둔 보물같은 장소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보물이란, 금은보화나 다이아몬드 처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평가될 수 있는 보물도 있지만,
나에게 소중한, 나에게 특별한 그것 또한 보물이라 할 수 있다면
내가 이야기하려는 보물은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하루는 학원 방과후 활동으로 옛날에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서 하는 클래식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가 끝나고 간단히 타파를 먹은 후, 함께 간 친구 루크의 피소에서 그날 밤 파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밤의 그라나다는, 아니, 아마 스페인이라고 해야 옳을라나,
암튼 그때의 이곳은 fiesta, 파티의 천국이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피소에서 여는 소규모 파티에서 시작해서,
타파, 디스코텍으로 이어지는 파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파티들이 그라나다 이곳저곳에서 벌어진다.
금요일 밤, 왠만큼 급한 일이 있지 않다면 친구를 따라 파티에 나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사람이 없어도 상관 없다. 왜냐하면 fiesta 니까.
술을 마시지 못해도 상관 없다. 왜냐하면 fiesta 니까.
즐겁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음악이 있으면 함께 즐기고, 맥주도 좋고 콜라도 좋고, 그라나다의 공짜 타파를 즐기면서,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 만나서 그 만남을 즐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밤새 즐겨도 좋고, 일찍 나와도 좋고, 어느 쪽도 의무는 아니다.
즐기지 못한다면 그건 fiesta 가 아니니까.
어쨌든, 아직 한 번도 fiesta에 가본 적 없었던 그때,
호기심 반 설레임 반 해서 친구들을 따라 루크의 피소로 갔다.
가다가 슈퍼에서 들러, 각자 마실 것, 환타 레몬, 코카 콜라, 와인, 혹은 맥주, 등등 해서 캔 하나씩 들고서
금요일 밤 그랑비아를 힘차게 활보했다.
(이곳에서 파티에 초대되어 갈 때는, 마실것 이라든가,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게 예의다.)
루크의 피소는 알바이신 중턱에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알바이신에 많이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였던 터라,
가는 길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돌아올 때가 걱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길은 어찌나 구불구불하고 복잡하던지...
요즘은 그라나다에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알바이신을 추천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의 나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알바이신에 지레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렇게 도착한 루크의 피소는 내가 생각했던, 4~5명 정도가 사는 작은 규모의 피소가 아니라,
13명이 함께 살고 있는, 근사한 파티오가 있고, 역사가 500년도 더 된 전통적인 알바이신의 2층 건물 이었다.
알바이신 중심에서 살고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00년, 300년.. 등등
흔히 이쁘다며 지나치는 하얀 건물들의 역사가 어마어마 하다고 한다.
이 하얀 건물들은 때가 되면 페인트칠을 다시 한다고도 하고,
여름이 되면 이런 오래된 건물들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엄청나게 시원하다.
반면 최근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이곳의 기후가 1년 12달 중에 추운 건 2달이고, 더운 게 10달이라서,
옛 사람들은 그냥 2달 춥고 10달 시원하자는 생각에
외벽을 두껍게 하고, 창문을 햇볕이 잘 들지 못하게(정확히 말하면 완벽히 차단할 수 있게) 만들고,
재료도 실내 온도가 덥지 않게 유지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정도로 덜덜덜.. 춥지만,
여름에는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불볕 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전에도 한번 말했던 추운 겨울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겨울에도 덜 춥게 만들었지만,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여름에는 덜 시원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루크네 피소는 정말 너무너무 근사했다!
특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정방형의 파티오와,
그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한 낡은 기둥과 오래된 계단, 그리고 난간들..
또, 13명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파티가 되면 어김없이 모여든다는 수많은 여행자들과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파티오와 난간의 이곳저곳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인상적인, 그야말로 '알바이신의 자유'를 형상화 한다면 그날 밤의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멋진 곳이었다!
후에 알게 된 그곳의 이름은 Casa Tiña 이고,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으로,
무슨 관광지 그런 곳은 아니지만, 금요일 밤 열리는 Casa Tiña의 파티는 유명해서,
누군가의 초대로, 혹은 건네 들은 이야기로 파티에 초대되면,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파티오에 있는 작은 의자에 쪼르르 앉아 환타, 콜라, 맥주 등 자기가 가지고 온 음료를 마시면서 파티를 '구경' 했다.
파티를 구경하다 보니, 누군가 하나 둘 말을 걸어왔고, 어느 새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3층에서 자고 있던 미치요도 내려와서 함께 파티를 즐겼다. :)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Casa Tiña 에서 직접 불렀다는 집시밴드의 연주 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라나다에는 알바이신도 있지만, 사크로몬테가 있다.
이곳은 집시들이 지금도 살고있는 곳으로, 그라나다에는 지금도 집시, 히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집시는 언제나 이방인일 수 밖에 없겠지만, 이곳에서의 집시는 이미 문화와 역사의 일부분으로,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집시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어찌되었든, 집시밴드가 와서 신나는 레게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500년 된 알바이신의 고택에서, 그라나다의 모든 여행자들과 젊은이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음악에 춤을 추고, 시끌벅적하게 웃어대면서..
그렇게 금요일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참고로, 이곳에서 알게 된 나름 신기했던 문화 중 하나가,
여기서는 여러명이 모여있을 때,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해도 그게 실례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 학원쌤 말로는, 언제 시간되면 아무 Bar 에나 들어가서 타파를 먹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엄청 재미나다고. ㅋㅋㅋ
여기서 말하고 저기서 말하고 그러다가 서로 몸 부대끼면서(신체적 접촉또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친근함의 표시라고 ㅎㅎㅎ)
점점 목소리 커지고, 누가 보면 싸우는 것 같지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또 웃고 떠들고.. ㅋㅋㅋ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문화를 이야기할 때, 혹 안달루시아 문화를 이야기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Bar 라고 한다.
Tapa가 공짜인 도시, 그라나다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래서 겠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 바로 Bar 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튼, 그 후에도 미치요의 초대로 몇 번 Casa Tiña 의 파티에 갔었다.
언제 가도 즐거운 집시 밴드가 있었고, (이곳 그라나다에는 수많은 거리의 음악가들이 있기 때문에, 스무명 정도가 모이는 중소규모 파티에서도 거리의 음악가를 불러 함께 음악을 즐기곤 한다.)
그 밴드의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다 눈을 마주치면 항상 웃어주는 다정한 얼굴들이 있던 Casa Tiña 의 밤들.
한 번은,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었는데..ㅋㅋㅋ
그것도 재미있는 해프닝 중 하나였다.
보통 벽이 두껍기 때문인지, 문을 닫고 파티를 하면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던 Casa Tiña 친구들 얼굴이 생각난다.
나와 미치요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다가 상황을 접해서,
'경찰'이 왔다는 생각에 겁을 먹었었는데.... ㅋㅋㅋㅋ
여기 저기서 난간에서 경찰 사진 찍고, 경찰들 앞에서서 기념사진 찍고..ㅋㅋㅋ
여튼, 이웃에 피해를 가게 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게다가 이곳 알바이신은 왠만한 소음에는 너그러운 편인 듯 하다.
지금도 어느 집에선가 누군가의 기타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곳에 살고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여유일까. :)
그 후 루크도 영국으로 돌아가고, 미치요도 일본으로 돌아간 뒤로는
Casa Tiña 에 살고있는 친한친구가 없어서 가보질 못했지만,
지금도 나에게 Casa Tiña 는 알바이신의 중심에서 이곳의 수많은 색깔 중 어느 한 가지 색을 그대로 담고 있는,
알바이신의 상징적인 장소중의 하나이자, 늘 친구들과 함께 그리운.. 그런 곳이다.
이곳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Casa Tiña 의 fiesta 에 가서
언제나 그곳에 있을 집시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모여든 여행자들과,
지금은 아마 아는 얼굴들도 꽤 있을 학생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금요일 밤을 즐기면서,
500년 된 고택 파티오에서, 인생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까사 티냐, 그리고 금요일 밤이여 영원하라!!! :)
<Casa Tiña 의 Fiesta, photo by Guti Gius Gius>
위 사진을 제외한 컨텐츠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사전 동의없이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
| 사크로몬테의 여름 밤, 그리고... (0) | 2013.04.10 |
|---|---|
| 카니발! 그리고 카디즈! (0) | 2013.04.10 |
| 카톨릭과 스페인 (0) | 2013.04.10 |
| 그곳을 걷다, Albyzin (0) | 2013.04.10 |
| Granada days (0) | 2013.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