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2월. 아직 좀 쌀쌀한 날씨인 그때, 그라나다 거리 이곳저곳에 언제부턴가 카디즈로의 1박2일 여행 광고지가 붙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2월에 카디즈에서 유명한 카니발이 있단다.
카디즈는 스페인 남부 바닷가에 접해 있는 해안도시다. 예전에는 배들이 자주 드나들던 도시라서 아직도 캡틴과 뱃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
카디즈의 카니발은 나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니발로, 모든 사람들이 독특한 분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로 유명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합창!
팀 별로 독특한 분장을 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주를 이루어 합창 대회를 하는데, 매 해마다 그 대회를 TV 로 방영을 해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합창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나머지 하나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코믹하고 사회풍자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 합창을 '치리고따' 라고 한단다.
여튼, 다들 카디즈 카디즈 하던 그 때, 나도 함께 카디즈를 외치며 버스를 예매했다.
카디즈까지는 사실 버스비가 만만치 않지만, 그라나다는 에라스무스 교환학생들이 워낙 많은 도시라, 그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도 많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단체버스로 갔다 오면, 가격이 많이 저렴해진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아침 일찍 가서 하루종일 놀다가 새벽에 카디즈를 떠나 다음날 아침 그라나다에 도착하는, 사실상의 무박 2일 일정이라는 것.
그래도 뭐 어떤가. 숙박비도 줄일 수 있고, 교통비도 줄일 수 있고, 신나게 카니발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 이상의 일정은 필요치 않다.
카디즈 카니발을 가기 위해 학원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신청해 놓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분장할 옷을 사는 일이었다.
분장할 옷은 저렴한 중국인 가게에서 샀다. 이곳에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중국인 가게에는 정말 없는 게 없다. 어찌 보면 대단하고, 어찌 보면 신기하다.
나는 깃털이 달린 노란색 반짝이 모자와, 하트모양 하얀색 안경을 샀다. 그리고 비고테, 콧수염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ㅎㅎㅎㅎ
사실 카디즈 카니발은 친구들끼리 컨셉을 맞추어 셋트로 입고 가야 더 재미있는 거였지만, 그때 우린 그걸 몰랐으니까. 하지만 뭐 상관없다. 카니발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카디즈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정말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야하는 광장으로 갔다.
우 리 말고도 카디즈로 가는 버스를 타러 온 학생들이 엄청 많이 있었다. 그리고 또 버스들도 엄청 많았는데, 모두 다른 회사의 버스들이라서 버스를 찾는 데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버스를 찾아, 드디어 카디즈로 출발했다! 바모스!!! :)
가 는 길에 윈도우 배경화면을 닮은 초원도 보았고, 휴게소에 잠시 들러 맛있는 것도 사먹고, 여차저차 카디즈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정오 쯤 됬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부터 새벽 3시까지 카니발을 즐기고 버스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버 스를 세워둔 곳에서 시내로 걸어가면서, 그 어마어마한 긴 시간동안, 이 청춘들 틈에 섞여 즐기면서 내 체력이 잘 받쳐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그라나다보다 춥지 않은 카디즈의 따뜻한 햇볕을 기분좋게 느끼며 한발 한발 내딛는 동안, 어느 샌가 걱정 보다는 설레임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센트럴로 들어서면서 과연 갖가지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매워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친구들과 가족들과 컨셉을 맞춰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아이가 있는 가족들도 아이가 분장을 하고 온가족이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부터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카니발을 즐기고 있었다!
스페인 하면 축제가 떠오를 정도로 축제의 나라, 스페인이라서 그런지, 이 사람들은 정말 즐기면서 삶을 사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한국에서 그 지역의 축제를 하는데 야시장에 엄마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카
니발과 같은 축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많이 있다. 야시장에 가면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있고, 혼을 쏙
빼놓는 각설이 타령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엄마는 각설이 타령을 정말 좋아하셔서, 엄마와 함께 두번 세번을 보러 가곤 했었고, 갈
때마다 사먹은 엿도 꽤 됐다.
하지만, 구경하는 축제 말고도 이 카니발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 만난 한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엄마 아빠 아기들까지 모두가 스머프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버섯 분장을 하셨고, 할아버지는 가가멜 분장을 하고 계셨다. 스머프는 이곳에서는 피투포 라고 한다.
어릴 때 즐겨보던 캐릭터를 이곳에서도 보니 너무너무 반가웠다! 특히 연세가 꽤 되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익살스러운 분장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같
이 사진을 찍자는 말에 흔쾌히 좋다며 사진을 찍어주신다. 살짝 쑥스러워하시면서도 너무 즐거워하시는 할머니와 무뚝뚝한 표정으로 양
볼에 볼터치까지 해가며 가가멜 역할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귀여우셨다. (실례^^;) 꼬맹이들은 너도 나도 신나서
주머니에 반짝이는 종이를 한웅큼 넣고 여기 저기 종이를 뿌리면서 다니고 있었다. 나도 돌아가면, 미친척 하고 우리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컨셉을 잡아서 제대로 분장하고 야시장에 한번 가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이가 들면 꼭 점잖아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편견일 지도 모른다. 인생은 누구나 즐길 권리가 있으니까.
카디즈라는 도시는 바다에 접해 있어서 넓은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바다가 주는 그 푸르름이 도시를 가득 채워 활기를 복돋아주고 있었다. 특히 밤바다를 따라 펼쳐진 해안도로와 길게 펼쳐진 해변의 모래사장에 온갖 분장을 한 청춘들이 끝도없이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카니발을 즐기는 모습은, 뒤에 남을 쓰레기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매우 근사한 젊음이 아닌가 싶다.
카디즈의 바에는 사람의 얼굴을 크게 오려서 벽에 붙여놓은 사진들이 많이 있는데, 이 사진들의 정체는 바로 매 해마다 치리고따 경연대회에서 상을 탄 사람들의 얼굴이다. 우리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카니발을 즐기다가 밤10시 쯤이되어 치리고따 공연이 펼쳐진다는 시내 중심가의 가설무대 앞으로 갔다. 정식 경연대회는 무슨 극장 안에서 하지만 시내 중심가에 시청에서 설치한 가설무대 위에서도 유명한 치리고따 공연팀의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일찌감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게다가 공연이 시작하는 10시가 되자,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은 다행히 요리 조리 빼집고 들어가 꽤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치리고따와 또 하나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합창은 근사했다!
무겁고 중후한 느낌의 함창이 아니라 그야말로 힘차고 신나고 익살맞고 재미있는 합창이었다.
첫 팀은 마치 포도송이를 연상시키는 보라색 의상으로 통일된 합창팀이었는데, 노래가 그야말로 저 푸르른 바다 힘찬 파도보다도 더 힘차고 신났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점프를 하며 'Yo soy andalus! Andalus! Andalus!' 를 외쳤다!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정
말 너무너무 신이 났다! 옆에 서 있던 말라가에서 왔다는 스페인 청년들이 우리에게 건내는 '론 바르셀론' 이라는 쥬피토(독한
술)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치리고따 공연이 시작되었다! 두번째 팀은 익살맞은 분장으로 청소하는 아낙네로 꾸민 4명의 남자들이
치리고따를 불렀다. 잘은 모르지만 가사가 아주 풍자적이었는지, 거리가 열광의 도가니였다. 특히 이 팀의 리더가 인기가 많은지,
사람들이 'pepe!'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동작 하나하나에 여기 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아무튼 이렇게 4~5팀의 공연을 다
보았다.
시간이 어느 덧 새벽이 되어 밤바다를 따라 해안도로를 걸어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 말 치리고따는 멋진 공연이었고, 혼을 쏙 빼놓는 합창이었다. 듣고 있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 할 정도로 신명나는 음악이었고, 가사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가사마저 다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신이 났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스페인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ㅎㅎㅎ
카디즈. 이 도시에서는 누구나 세상에서 한 발자국 쯤 떨어져 낯선 이가 되어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흥겨운 치리고따 리듬에 맞춰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넌 어디서 왔니. 난 그라나다에서 왔어. 난 말라가에서 왔어. 이 말 한마디, 혹은 그조차도 필요없이 나와 눈이 마주친 누구나, 친구가 되어 카니발을 즐길 수 있는 도시.
마
주치는 눈빛에 방긋 웃어주는 눈동자들은 분명 어딘가에 발붙이고 사는 현실세계의 사람들이겠지만, 왠지 나는 지금 어릴 적 우리가
꿈꾸던 동화속의 나라에 와 있으며 나에게 웃어주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라고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세상.
그곳이 바로 카디즈의 카니발 이었다.
귀 여운 공주님 복장을 한 꼬꼬마 스페인 아가씨의 '꼬모 떼 야마스?'(이름이 뭐야?) 한 마디에, 문득 사랑하는 우리 조카와 가족들도 무척이나 보고싶어지는, 그래서 더더욱 내 주위에 이 낯선 사람들이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새벽 3시에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이미 아침이었다.
마침 그날은 친구 미치요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고, 우리는 비몽사몽간에 안녕을 고했다.
아직 아무도 없어 한산한 그라나다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모든 게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깨고나면 미치요도 카디즈의 카니발도 이제는 없겠지만, 어느 것도 꿈은 아니다.
그 거리에서 느꼈던 즐거움과 따뜻함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카디즈. 카니발. 그리고 치리고따여, 언젠가 이곳을 찾은 또다른 여행자에게도 나와 같은 따스함을 줄 수 있기를!
그곳에서 마주친 우리 모두에게 그날의 즐거운 기억들이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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