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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크로몬테의 여름 밤, 그리고...

Granada days/Encanto

by priim 2013. 4. 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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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앞에서 바라보는 야경, 멀리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 그리고 사크로몬테의 불빛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비교적 많이 알려진 영화 탓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사크로몬테에서 이런 낭만적인 야외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면야, 간혹 풍겨오는 매케한 담배연기 쯤은 참을 수 있다.>


오늘은 영화를 봤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늘은 사크로몬테에서 영화를 봤다.

오늘은 사크로몬테에서 야외상영을 하는 영화를 봤다.


난 정말 이런 순간순간에 내가 이곳에 있음에 감사한다.


이 고마운 영화상영 정보를 알게된 건 그라나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 Nan 과 Eva를 통해서였다.


"써니, 사크로몬테에서 여름에 영화를 아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그것도 야외상영이야! 같이 보러 갈래?"

"좋아! 그런데 사크로몬테라면, 밤에 조금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 영화보러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렇게 우연찮게 그들을 따라 나서게 된 사크로몬테.


그라나다에 몇개월을 살면서, 사크로몬테를 밤에 거닐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미 상업화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수많은 타블라오 플라멩고를 지나,

알바이신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알함브라의 야경을 즐기며

그렇게 처음 보았던 영화는 'I'm not there' 라는 밥딜런에 관한 영화였다.


스페인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야외상영되는 영화도 거의 대부분이 더빙.


그래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스페인어로 더빙된 영화를 이해하는 내가 참 대견하기도 하다.


여튼, 그렇게 보았던 아임낫데어는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라 더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내용이나 대사가 사실 조금 은유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난 좋았다.


그래서 오늘!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러 사크로몬테로 향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사크로몬테의, 정확히 말하면 동굴 박물관의 마당 이었다.

입장료는 3유로, 언덕과 동굴 몇개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변의 전망, 특히 화장실 앞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와 사크로몬테의 야경이 끝내주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친구 말로는, 자기가 본 그라나다의 야경 중에 최고라고..)

주변에 불빛이 별로 없어, 영화 보기에도 최적이거니와, 밤하늘의 별도 반짝반짝 빛나고, 신기하게 모기도 별로 없다.

낮에는 불타듯 뜨겁지만, 밤에는 선선한 이곳 날씨 덕에, 점수로 치자면 100점짜리 바람도 간간히 불어주어서,

그야말로 야외 영화를 보기에는 금상첨화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야외 상영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거나, 쉬는 시간에 잠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장점일 수 있겠다. 담배 연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ㅎㅎ


여튼, 오늘 우리가 본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였다.

이곳에서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는 드물게 오리지날 버젼, 즉 더빙을 안하고 자막처리를 한 영화 였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원래 언어는 무엇이냐. 이스라엘어 였다.

영어 였다면 그야말로 만세! 였겠지만, 이스라엘어는... 좀 난감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자막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자막보다는 더빙이 편하다는 거였다.

절대. 절대. 절대로 더빙처리된 영화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외국영화를, 외국에서, 외국어로 보아야 하는 처지가 되니까,

역시 읽기보다는 듣기가 더 쏙쏙 이해되고, 덜 피곤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주 훌륭했다.

레몬트리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감독의 작품인데,

제목은 el viaje del director de recursos humanas (휴먼 리소스 매니저) 였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아마 외국에서) 일하던 한 여성의 죽음을 다룬 영화였다.

처음 부분이 좀 헷갈려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빵집에서 일을하던 그녀가 어찌어찌 죽게 되었는데,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그 사실을 조사하다가 어찌어찌 얽히게 되어,

그녀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반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아들,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또 차를 운전해주는 운전기사, 차가 고장났을 때 탱크를 빌려주는 군인들, 등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되는 가족, 그리고 고향.. 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영화랄까.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지라서 그런지,

이야기가 더 와닿기도 했고,

나 말고도 주변에 멀리 페루에서 온 우리 콤파녜라들도 생각나는..

그래서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이야기였다.


영화는 잔잔하게 그리고 따뜻한 눈길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숨이 넘어갈 듯한 통곡도, 바다를 이룰 듯한 눈물도 없지만

영화를 본 뒤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깊은 여운이 남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중간에 한 번의 쉬는 시간이 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시 뭐 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쉬는 10분 정도의 시간이다.

화장실 앞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는 역시 예술이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한 20분 정도만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 위에는 백조자리가 날고 있었고, 호주에서 온 친구에게 '북두칠성'을 보여주며, 저 별자리가 영어로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호주에서 보이는 별자리는 남십자성을 중심으로한 전혀 다른 별들이라서 잘 모른다고 한다.

아차. 이럴 때 문득문득 이들과 나의 사는 곳이 아주 먼 곳이었구나 하고 느낀다.


여튼, 영화를 다 본 후 우리는 가볍게 타파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소 무거운 2012년의 여름이 사크로몬테의 바람을 타고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함께하는 대화가 늘 즐거운 친구들 덕에,

8월 내내 영화를 야외에서 상영해주는 동굴박물관의 여름 이벤트 덕에,

잠시 내 마음을 짓눌렀던 시름을 잊고, 친구들과 마음껏 활짝 웃어본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 혹은 그리 먼 훗날이 아니어도 나는 이 날들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웃으며 나와 행복한 시간을 나누었던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름 밤, 사크로몬테에 두고 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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