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길, Paseo de los tristes
언제든 좋다.
여기저기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아침이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든,
긴 그림자와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저녁이든,
유난히 밝은 달과 수많은 별들이 떠오르는 한 밤 중이든,
나는 언제나 이곳을 걷고 싶다..
어떤 날은 Paseo de los tristes 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7월의 Paseo de los tristes 가 생각난다.
더운 여름에는 주로 8시 이후에 밖에 나오는 게 일상이다.
해가 지고 난 후, 돌아다니기 딱 알맞은 정도의 기온이 되었을 때,
Plaza Nueva 에서 친구와 만나 늘 이 산책로를 걷곤 했다.
혹은 알바이신을 한바퀴 돌아 Paseo de los tristes의 반대편으로부터 걸어오기도 했다.
알함브라를 방문하고 나서 내려올 때도 Cuesta de los chinos 로 내려와 이 길을 걷곤 했다.
이제 나는 빈 주머니에 낭만만 가득 하다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로, Paseo de los tristes 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곳을 걷다..
여름의 Plaza Nueva 는 뜨겁다..
안달루시아의 그 뜨거운 태양을 만끽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로
그곳은 언제나 붐빈다.
겨울의 Plaza Nueva 는 따뜻하다..
추운 겨울에도 마찬가지로 태양을 찾아 내려온 수많은 여행자들로
언제나 그곳은 붐빈다.
여행자들, 그들에게 Segway 전단지를 나눠주는 Segway 직원들,
커다란 비누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남자,
건물 벽에 기대어 돌바닥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보는 학생들,
커다란 종이를 바닥에 깔고 언제나 이 산책로 주변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아저씨,
저 한쪽에서는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와 몸짓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연기를 하는 광대 아저씨까지..
늘 붐비는 Plaza Nueva 를 지나면,
오른편의 Darro 강을 끼고 펼쳐지는 산책로가 나온다.
산책로의 왼편으로는 아랍식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도 있고,
그다지 훌륭하진 않아도 썩 나쁘지도 않은 괜찮은 동굴 플로멩고를 일주일 내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Cien Andalus 도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 보면,
레게머리, 피어싱, 낡은 기타와 큰 개를 데리고,
공예품을 팔고 있는 히피들이 있고,
그 옆에는 종종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길의 반대편 다로강 턱에 걸터앉아, 이 풍경과 음악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하나 둘 보인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아랍식 목욕탕도 보인다.
이곳은 찾기가 조금 힘들지 모르겠지만,
꽤 가볼만한 곳이다. 옛날에 어떤 곳에서 목욕을 했는지,
잘 보존되어있는 곳 중의 하나니까.
차를 파는 테테리아도 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알바이신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들은,
이곳에 오래 살아본 이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저렴한 가격에 정말 근사한 플라멩고를 볼 수 있는 Peña Plataria 도 이 길에서 오라갈 수 있고,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알바이신에서 발견한, 알함브라가 그대로 내다보이는 테테리아도 이 골목길로 올라가면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이런 골목길들로 하나 둘 쏙쏙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그들을 따라 시선을 쫓아보면, 익숙한 알바이신의 모습들이 거짓말처럼 그 좁은 길 사이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냥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도 나는 좋다.
오른편에 강이 아니라 건물이 나타나면,
좁아지는 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낮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안달루시아식 처마 사이로 빛난다.
그리고 어느 한 귀퉁이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타자기로,
시를 써준다는 떠돌이 시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낡은 타자기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길을 걸어보면 알게된다.
걷다보면 걸음걸이는 저절로 리듬이 된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은 어쩌면 내 발걸음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길을 따라 전해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Darro강을 따라 펼쳐지는 이 멋진 산책로의 이름이 Paseo de los tristes (슬픔의 산책로) 라는 것은,
더더욱 이 길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만든다.
이 이름에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대로,
그라나다의 마지막 술탄 Boabdil 에 관련된 이야기.
카톨릭 세력은 그라나다에 무혈입성을 했다고 들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술탄 보압딜이 카톨릭 왕에게 성문의 열쇠를 넘겨주는 그림은
지금도 유명하고, 세비야의 유명한 스페인 광장의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그림으로도 꾸며져 있다.
술탄이 그라나다를 떠날 때,
이 산책로를 지나며 마지막으로 그라나다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눈물 때문에 이 산책로는 Paseo de los tristes 라는 이야기이다.
이때 그의 어머니 Aixa 가 했던 말 또한 유명하다.
"남자답게 지키지 못했음을 여자처럼 우는구나¡"
"Llora como una mujer lo que no supiste defender como un hombre!"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 의해 씌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나다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무슬림의 세력하에 있을 때의 그 많은 영광 보다는
무슬림의 세력이 물러날 때의 비참한 이야기들과,
그 이후 카톨릭 세력의 화려한 번창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압딜이 그라나다를 떠나는 그 순간이 더 회자되기도 하겠지만,
알함브라, 또 알바이신 그 아름다운 그라나다를 보노라면,
또 그때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 지를 상상하고 있으면,
그때 흘렸을 보압딜의 눈물이 어떤 눈물이었을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슬픈 연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Plaza Nueva 에서 Paseo de los tristes 를 따라 걷다보면
왼편 어느 오래된 건물의 2층 한 모서리에,
독특한 발코니를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에는 창이었으나, 이제는 막혀버린 발코니.
그 발코니 주변에 써 있는 글자는, Esperándola del Cielo, 즉 '그녀를 하늘에서 기다려라' 라는 뜻이다.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 발코니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건물은 오래 전, Zafra 가문의 Sr.Castril 의 저택이었다.
그는 유명한 귀족으로, 지금은 건물의 정면 부분만이 남아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그 저택이 화려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Sr.Castril은 그의 딸이 하인과 침실에서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같이 하가 난 그는, 당장 그 자리에서 하인을 발코니에 매달아 죽였고,
하인은 죽어가며 그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하늘에서가 아니면 만날 생각도 하지 말아라!" 라는 말 뿐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딸의 방의 발코니와 문 앞에 Esperándola del Cielo 라는, '하늘에서 그녀를 기다려라',
즉, 이 세상에서는 만날 생각도 하지 말아라는 문구를 새기게 하였고,
딸의 방의 창문도 막아버리고 말았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 창문을 막아버린 벽 사이에 그녀의 딸의 시신이 들어있다고도 하는데,
여튼 그런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슬픈 영혼이 Darro 강과 산책로를 맴돈다 하여 붙은 이름이
Paseo de los tristes 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아… 못되먹은 영감탱이, 이렇게 한 마디 하면서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넒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으로 나가기 전에는 건너편으로 가는 다리가 있는데,
예전에는 이 다리를 건너 건너편의, 지금은 숲이 되어있는 길을 따라 알함브라로 오르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통해 일반인들이 술탄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여튼, 이 길에 들어서면, 정말 그림처럼 눈 앞에 가까이 펼쳐지는, 알함브라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나, 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라면 더더욱 추천한다!
달밤, 이 광장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의 야경은… 정말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고는 그 감동을 전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보이는 순백색의 헤네랄리페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 있고,
여름 밤이면 늘 이 광장에서 멋진 불쇼를 펼치는 청년이,
언제나처럼 수준급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든다.
뜨거운 불을 휘두르며 격정적인 몸짓으로 펼치는 그의 퍼포먼스는
마치 이 거리를 배회한다는 사랑에 빠진 슬픈 청년의 영혼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사람들 뒤로 다로 강 변의 턱에 걸터앉아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또한,
사시사철 언제나 이 산책로의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이다.
연인들,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아우라와,
설레임으로 가득 찬 그들의 눈동자가 알함브라와 다로 강… 그리고 수많은 별들과 함께,
이곳을 더욱 낭만적인 곳으로 만든다.
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야외 테라스 중 아무 곳에나 앉아 알함브라의 멋진 풍경에 압도당하며..
Tinto de verano 를 한 잔 마신다.
Tinto de verano 는 와인과 환타레몬을 섞은 음료인데,
이 지역에서는 워낙 이렇게 많이 마신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적인 음료이다..^^
Tinto de verano 의 붉은 색 뒤로 멀리 불쇼를 펼치는 청년이 날리는 두 덩이의 불이 보인다.
여기 저기 테라스에 오오 삼삼 모여앉아있는 저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겠지.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이런 그림같은 순간은..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음껏 느끼면 된다.
언젠가 내 친구는, 나중에 프로포즈를 한다면 꼭 Paseo de los tristes 의 야외 테라자에서 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곳을 지난 수많은 연인들 중에는
그 친구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연인의 귓속에 사랑을 속삭이는 프로포즈를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 빠진 슬픈 청년의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Paseo de los tristes 이지만.. ^^
조용히 흐르는 맑은 다로강
한 번은, 강의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산책로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지만,
건너편은 사람이 거의 없던, 그 조용한 정적 속에
푸르게 펼쳐진 초목과 저 한 귀퉁이 강턱에 걸터앉아서 기타를 치며 팝송을 부르던 젊은이들이 기억난다.
강의 아래에는 무성한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또 언제나처럼 강아지만한 고양이들이 풀숲에 느러지게 누워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다로강은 시에라네바다에서 내려오는 강이라 물이 깨끗하다.
언젠가 까를로스 5세의 궁전에 있는 갤러리에서 보았던 그림 중에 다로강의 정령이라는 그림이 있었다.
그림이라던가, 음악이라던가 이런 예술작품들이 참 신비로운 건,
그것을 접하기 전과 접하고 나서의 세상이 확연히 달라보인다는 것.
조용한 다로강변 고요한 풀밭 위에서 다로강의 정령이 그려진 그 그림이 문득 생각난다.
그림 속의 이야기 처럼..
프랑스에서 온 한 친구는 이 산책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불렀던 그곳의 작은 사진들을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로, Paseo de los tristes 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사랑에 빠진 슬픈 청년의 영혼과 그라나다를 잃은 보압딜의 쓰라린 가슴도
이제는 모두 이야기 속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버린 이곳, Paseo de los tristes 에서,
내가 보낸 많은 시간들과 수많은 대화들도 언젠가는 이곳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Los Momentos del Paseo de los Tristes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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