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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봄

Granada days/Encanto

by priim 2013. 4. 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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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봄을 걷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겹겹이 쌓이는 도시 그라나다.

그라나다 시에서 그라나다를 소개하는 안내 문구를 보면,
그라나다에는 버스도 있고, segway도 있고, 한창 지하철도 공사중이지만,
이곳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발로 걷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본 결과, 이 말은 결코 허투른 말이 아니었다는 거.

이곳에서는, 빠르면 빠를 수록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언제나 걸음걸이의 속도, 딱 그 속도에 맞춰 어디든 걸어가 보면
천천히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들을 우리에게 드러내지만,
버스를 타고 지나치거나, 세그웨이를 타고 쌩쌩 달려가면,
그런 것이 존재하는 지 조차도 모르고 지나갈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이곳에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도시를 만나기 위해, 가급적이면 자주 이곳 저곳을 걸어다닌다.
머리가 복잡할 때, 이것저것 마음이 무거울 때, 사는 게 조금 버거워질 때면
어디든 선택해서 걷기 시작한다.
딱히 그런 이유가 없어도, 날씨가 좋아서, 혹은 날씨가 안 좋아서, 친구와 함께니까,
등등의 별것 아닌 이유로도 걷기도 한다.

엊그제는 간만에 날이 반짝 개었다.
올 3월의 그라나다는 비가 자주 내려서,
아마 쎄마나 산타가 다가와서 내리는 슬픔의 눈물인지,
덕분에 꽁꽁 추위 때문에 자주 걷지 못했는데,
그 날은 파란 하늘이 쩅쩅하게 개어 구름 한 점 없는 따뜻한 봄 날씨를 마구마구 뿌려대고 있길래,
친구와 함께 어디든 걷자! 하고 무작정 나갔다.

집 안에서 추워서 몇겹씩 껴입고 있던 옷은,
걸어가며 하나 둘 벗어재껴 가방에 묶어 두었고,
결국은 단촐한 봄옷 정도만 입고 걷게 되었지만,
아마 반팔을 입어도 그닥 춥지는 않을 듯한 날씨였다.

이 어마어마한 기온의 차는 참, 역시 3월은 변덕스럽다. 

 

 


살아남은 자들의 그리움이 가득한 그 곳

알함브라의 입구부터 매표소까지 걸어올라가는 길은,
양 옆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상냥하게 들려오고,
오래된 높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상쾌한 그늘이 그야말로 일품인,
조용히 걷기 좋은 최고의 길이다.

알함브라를 방문한다면, 왠만하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 길을 걸어 올라가길 추천한다.
오르막길이라 힘에 부친다면 자주 다니는 미니버스를 타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알함브라의 프롤로그와 같은 이 산책길을 꼭 놓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알함브라의 매표소를 지나 그 길을 계속 가면,
알함브라가 있는 언덕의 알함브라 뒷편,
그라나다에서 가장 양지바르나 곳 중의 하나인 그곳에,
그라나다의 묘지가 있다.

어릴 때 생각했던 묘지는,
늘 전설의 고향의 배경으로,
하얀 소복을 입은 한맺힌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으시으시하고 무서운 곳이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만나는 묘지는, 왜인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긴머리 귀신이 나타날 리가 없기 때문일까. ^^

파리에서 뻬르 라셰즈를 거닐 때도 그 무성한 숲 사이로 혼자 거닐어도
무섭기는 커녕, 마치 명상을 하는 듯 마음이 고요해지는 게 참 좋았고,
모로코의 셰프 샤우웬에서 산을 내려오다 만난 묘지도,
무섭다기 보다는 셰프 샤우웬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그곳의 풍경에 반해,
참 마음이 좋았었다.

어릴 때는 아마 내 주위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돌아가신 분들이 안 계셔서,
더더욱 귀신이나 사후세계가 무서웠던 것 같다.
나이가 이만큼이나 먹은 지금은 내 주위에 소중했던 사람들 중
많지는 않아도 몇몇의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렇기 때문에 묘지를 볼 때면, 죽은 사람들의 공간보다는,
한 때 세상을 살았던, 한 때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을 이들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묘지가 무섭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익숙해져가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이별에 익숙해져 간다는 건, 유난히 마음이 서글프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고통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그 고통에 반응하는 행동이 그 상황들에 익숙해져 갈 때,
위로받을 길 없는 마음들을 나름의 지혜로, 경험으로 삭여 나가면서,
이렇게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할,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떠나간 자를 추억하며, 그들이 그리울 때면 찾아와 꽃 한 송이 꽂아놓고..
그렇게 늘 함께있는 듯 느낄 공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묘지를 거닐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마음은 그리움이다. 

 



그곳에서 만난 또다른 그라나다

그라나다의 묘지는 알함브라 뒷편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서는 멀리 아직도 아이스크림처럼 하얗게 눈이 덮인 시에라 네바다가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의 숲에서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주변의 공간들은 올리브 농장이나 숲길이라 그 외의 소음도 거의 없다.
봄이라 활짝 피어있는 아몬드 꽃으로 보이는 분홍색 꽃나무들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어,
그 모든 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묘지에서 문득, 그라나다의 봄을 한껏 만끽한다.

묘지에 만개한 분홍색 꽃들이 마치,
한 때 그라나다에 살았었고, 이곳에서 오늘의 우리처럼 타파를 먹으며, 이곳에서 친구들과 길을 거닐었을,
이제는 이곳에 잠든 옛 그라나디노들이 우리를 향해 하는 반가운 인사 같았다.

이따금 사다리를 들고 가족이나 친구의 묘지를 찾아가
청소를 하고, 꽃을 꽂아두기 위한 사람들이 묘지를 거닐고 ,
초록색 옷을 입고, 착한 미소를 가진 친절하고 수줍은 청년이
묘지에 떨어진 나뭇잎과 꽃잎들을 쓸어담아 청소를 하고 있다.

이곳에 잠들어있는 자들은 아주 오래전의 사람들부터, 최근의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그라나다의 중요한 인물인 듯한 어느 아저씨의 오래된 묘비에는,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석류열매 안에, 알함브라와 왕가의 문장, 그리고 이자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까지 세겨져,
정말 그라나다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떠올리게 만들고,
어느 오래된 화가의 묘지에는 그의 친구 혹은 제자였을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의 조각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묘비들에는 사진이 부착되어 있는 묘비도 많이 있었고,
예수님의 형상을 조각한 묘비들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묘비들에 써 있는 문구는,
No te olvidaran…
당신을 잊지 않을 거에요.
혹은 Pensaba que seria fácil, pero es impossible olvidarte.
당신을 잊는게 쉬울 줄 알았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정확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구들이 써 있었다.

어느 부부의 묘비가 기억에 남는다.
그 묘비에는 부부의 오래된 사진이 걸려 있었고,
남편분의 돌아가신 연도는 1971년,
부인분이 돌아가신 연도는 2009년.
약 40년 전 세상을 뜬 남편을 근 40년간 그리워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부인.
그 부부의 묘비에 세겨진 묘비명은,

Por una vida llena de amor
사랑으로 가득찬 삶을 거쳐서..

또 어느 어머니와 두 아들의 묘비도 기억에 남는다.
두 아들을 각각 1990년과 2001년에 30, 40 이라는 젊은 나이로 앞서 보내고,
어머니는 2009년에 돌아가신 가족의 묘 였다.  
그들의 묘비에는 젊은 두 아들들 사이에 어머니가 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자식을 앞서 보낸 그 시간들 동안의 슬픔이 느껴지는 듯한 애틋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써있는 묘비명은,

Vuestra familia no os olvida.
너희들의 가족은 너희를 잊지 않는다.

그들을 추억하며 이따금씩 이곳에 와서 싱싱한 꽃들을 꽂아놓고 가는 건
아마도 아직 살아계실 그들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묘비 옆의 화려한 생화를 보며 문득 스쳐갔다.

29살에 생을 마감한 어느 젊은 기타리스트의 묘비에는
미니어쳐 기타 하나가 그가 삶을 통해 얼마나 기타를 사랑했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었고,
Padre 로 시작하는 어느 신부님의 묘비에는,
그가 얼마나 독실한 신자였으며, 얼마나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살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묘지에는 그런 수많은 그라나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이제는 모두 이곳에 잠들어 멀리 시에라 네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라나다의 상징인 알함브라의 뒷편, 이 양지바른 곳에서 그라나다를 내려다 보면서,
비가 오면 그 비를 제일 먼저 맞고, 더운 여름날에는 그 햇빛을 가장 먼저 느끼는 이곳에서..
그 많은 이야기들과 그 많은 삶들이 잠들어 있었다.

묘지 사이를 걷고 있으면,
왠지 저쪽에서 Hola! 하는 소리들이 들려올 것만 같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이 친절했을 것 같은 그라나다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 도시와 조금 더 친밀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묘지의 옆에는 이슬람 교도들의 묘지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묘지들이 옛 무어인들의 묘지인지 아니면 최근의 묘지인지 모르겠는데,
그곳에는 문이 잠겨져 있었다.
분명 입장 가능한 시간 이었는데도 문이 잠겨져 있어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슬람 교도들의 묘지는 그라나다 묘지를 나와 오른편으로 쭈욱 올라가면 만날 수 있었고,
뒷편으로 시에라 네바다가 정말 병풍처럼 가깝게 멋지게 펼쳐져 있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구 옆에는 코란의 한 문구가 세겨져 있었다.

Somos de Dios y a El volvemos (Corán 3-156)

우리는 신의 것이며 그에게로 돌아간다 (코란 3-156)


서양의 묘지에서는 참 신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들이 조각한 신은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오직 하나일 테지.
그곳에 잠든 그들 모두가 그들의 이야기 처럼 신에게로, 그의 품으로 돌아갔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먼곳에서 잠시 들른 이방인 친구가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바래본다.  

 




숲 속을 걷다..

무슬림 묘지를 지나 계속되어지는 산길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가길래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멀리 펼쳐져 보이는 시에라 네바다를 보면서 꺅꺅 거리며 우리끼리 사진을 찍으며..
언제보아도 예술이라며 경치를 마음껏 감상하면서.

오랜만에 걸어보는 산길은 역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산 처럼 나무가 무성한 산이 별로 없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민둥산이 많고, 나무도 올리브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길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큰 나무들이 꽤 있었고,
그 길을 거닐면서 우리는 혹시나 봄나물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냉이를 찾자며 냉이처럼 보이는 풀을 이따금씩 뽑으며 걸어갔다. 


 

 

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냉이를 찾다 보니, 어린 시절 가족들과 집 근처 학교의 옆 작은 풀밭에서 냉이를 캐던 생각이 났다.
우리집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었고,  농장이 많은 농촌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동생들은 냉이가 먹는 건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은 몰랐고,
엄마가 우리에게 냉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르쳐 준다며 다같이 비닐봉다리를 하나씩 가지고 그곳에 갔었다.
그날 우리는 냉이를 꽤 많이 캤었고, 나중에는 냉이를 찾아내는 것에 재미가 들려,
해가 질 때 까지 한참을 냉이를 캤던 기억도 난다.
직접 캔 냉이로 만들어 먹었던 냉이국은 꿀맛이었다. ^^

여기는 냉이처럼 생긴 풀들이 좀처럼 없었다.
비슷한 풀이 있어서 뽑아봤는데, 흙의 향이 너무 강해서 냉이 향이 잘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곳의 흙은 붉은 색이다.
알함브라라는 이름의 뜻은 붉은 궁전 이라던가.. 여튼 그런 뜻도 있는데,
그것은 이곳에 붉은 흙으로 지은 궁전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은 또한 이 지역의 흙이 붉기 때문이기도 한데,
바로 그 붉은 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걸어가는 우리 옆으로 MTB 를 탄 사람들이 종종 스쳐 지나갔다.
그라나다는 시에라 네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각종 산악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걷던 길은 정말 코스가 좋아서,
산악 자전거만 잘 탈 수 있다면 정말 한번 도전해 보고도 싶은 코스 였다.
산악 자전거 되에도 패러글라이딩, 스키, 등등…
이런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라나다에서 꼭 한번 체험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도시이기도 하니까. ^^

걸어가다 문득 메밀꽃 필무렵이 생각났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이효석의 메밀 꽃 필무렵의 허생원과 동이가
달빛 아래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을 나는 참 좋아한다.
길을 걸으며 친구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
그러다 자연스레 털어놓게 되는 인생사..
아마 그들이 한참을 걸었던 그 길도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길이었겠지.

조금 위험해서 아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이 길을 밤에 걸어도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 아래, 그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진 언덕 위 숲길을 허생원과 동이처럼 걸어도 멋질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므로, 상상은 상상으로 남겨둔다. ;) 

 



Silla del morro 전망대 (Mirador de Silla del morro), 살아있음을 느끼다!

주변의 나무들이 워낙 싱싱해서,
그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함을 가슴 가득히 들이마셨더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송충이를 발견했는데,
알고보니 그 나무 주변 가지에 송충이가 여기저기 많은 걸로 보아,
그 나무에는 송충이가 많은 것 같아서, 기겁을 하고 뛰었다. ㅎㅎㅎㅎ

한참을 뛰고 나니 송충이가 많은 소나무는 없는 것 같았다.
솔방울이 몇개 달린 소나무 가지를 길에서 주워들고 계속 걸었다.

중간 중간에 이정표와 지도가 있고, 우리는 그라나다의 수많은 미라도르 중에도
유명한 3대 미라도르 중 하나인 Mirador de silla del morro 로 가기로 했다.
Silla del morro 에서 silla 란 의자를 뜻하고, morro 란 알함브라를 지었던 무슬림들,
즉 북아프리카의 무어인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Silla del morro 란 무어인들의 의자라는 뜻이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뒷편에 무어인들의 묘지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하고 추측을 해본다.

원래는 알함브라의 매표소 뒤 주차장을 가로질러 좀 더 쉽게 오는 길이 있지만,
우리가 가던 길을 통해서 이 전망대로 가는 길도 있었다.

이 전망대는 그라나다에서 산 미겔 알토와 더불어 가장 높은 전망대 중 하나이고,
알함브라와 그라나다가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과
주위의 신선한 숲의 공기가 그야말로 일품인…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려진 사람들 사이에선 가장 좋아하는 전망대 중 하나이기도 한,
숲 속의 전망대 이다.

봄날의 가벼운 산행은 그 어떤 무거운 기분도 날려버린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Mirador de silla del morro 에 다다른 우리는,
그 숨막힐 듯한 아름다운 전망과 높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장엄함에 압도당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고..
저절로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어느 교수님께서 건축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이든 정확하게 느끼는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지금 보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것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정확히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건 굳이 건축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silla del morro 라는 건 알면 좋지만 몰라도 된다.
저기 보이는 궁전이 알함브라 라는 것도 알면 좋지만 몰라도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이 벅차오르는 느낌,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나를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이 공간이 나에게 주는 이 느낌은,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 흠뻑.. 그야말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각인시켜야 할 것들이다.

삶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누구나 그 삶을 끝내는 날이 온다.
우리가 이 세상에 없어도
이곳은 여전히 silla del morro 이고 저 궁전은 여전히 알함브라 일 테지만,
그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그곳에 부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벅차오르는 감성으로 그 느낌을 담아낼 나 자신은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의 한 구절 처럼,
모든 아름다움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없다면,
그저 흔하디 흔한 풍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을 그야말로 마음껏, 최대한 정확하게 한껏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그녀와의 비밀스러운 만남, 헤네랄리페

Mirador de Silla del morro 를 돌아서 가는 길은 두 개가 있었다.
한 개의 길은 알함브라 주차장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는 오솔길 이었다.
아직 해도 충분히 남아있고 해서, 우리는 가본 적 없는 후자를 택했다!

경사가 꽤 있는 비탈길은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중간 중간 제법 위험한 구간들도 있었다.
그래도 길을 걸을 수 있게끔 좁은 오솔길이 잘 정돈되어 조성되어 있었고,
잠시 후에 오른편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원한 사크로몬테의 광경은 그 모든 어려움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해질녘 최고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태양과 그 빛을 받아 그야말로 황금색으로 펼쳐지는
사크로몬테의 초목과 하얀 집들.
멀리 동굴 박물관도 보이고, 친구들과 타파를 먹었단 Rocio 바도 보인다.
저 멀리는 사크로몬테의 거의 끝에 위치한 수도원도 한 눈에 보이고,
왼편으로는 알바이신의 꼭대기에 위치한,
그라나다에서 가장 사랑받는 3대 미라도르 중 하나인 Mirador de san miguel alto 도 보인다!
그 좁은 오솔길을 걸어내려가면서도 그 풍경은 놓칠 수가 없어서 카메라를 꺼내어 정신 없이 사진을 찍었다.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에도 아슬아슬한 그 경사가 꽤 되는 비탈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아저씨가 조심조심 MTB 를 타고 내려오다가 커브 길에서 넘어졌는데,
멋쩍게 웃으면서,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다면서 다시 내려가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타는 것도 아닌데도 간이 콩알만해질 만큼 무서워 보였다.

그렇게 감탄과 조심을 리드미컬하게 갈아타면서,
사크로몬테와 알바이신, 지는 해의 아름다운 노을을 만끽하면서 내려오는데,
어느 순간 눈 앞에 나무 사이로, 저 앞쪽에 하얀 집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 집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곳이 바로 헤네랄리페라는 걸 깨달았다!!!!!!!!!!!!!!!!!!!!!!!!! 

 



와…. 진짜 그때의 감동은… 말로 이루 설명할 수가 없다!!!

헤네랄리페는, 알함브라 내에 있는 알함브라 본 궁에서는 좀 떨어진 별궁이다.
왕비가 여름을 나던 궁이며, 그 순백의 아름다움과 근사한 정원으로 유명한 궁이고,
헤네랄리페의 정원과 건물의 1층은 개방이 되지만, 2층 위로는 올라갈 수가 없다.
두 개의 건물이 마주보는 사이에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 2층에 아치 형태로 양 옆이 열려있는 복도가 조성된 건물이 있다.

평소 헤네랄리페에 방문할 때 보는 부분은 이 헤네랄리페 궁의 앞부분과 그곳에 위치한 정원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펼쳐진 헤네랄리페는, 평소에는 멀리, 아래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입장을 해서 봐도 절대 볼 수 없는 헤네랄리페의 뒷편 이었다!!!!

헤네랄리페 궁의 뒷편 앞에는 작은 정원이 형성되어 있었고,
낮은 울타리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넘을 수도 있는 높이였지만, 혹시나 들어갔다가 걸려서 나라 망신을 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울타리는 넘지 않고, 울타리 앞쪽 걸음 한폭 정도로 나 있는 돌길을 따라,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가 보았다!!! 



와….
아마도 왕비는 이곳에서 저 멀리 사크로몬테와 알바이신의 이런 풍경을 내려다 보았겠지!!!
궁에서 나오는 작은 문이 있었고, 그 앞쪽의,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고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그 옛날 무어인 왕비가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그 문을 열고 나와
이 작은 정원에서 저 멀리 알바이신과 사크로몬테를 바라보는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궁 너머로 헤네랄리페를 방문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은 궁의 2층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볼 수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비밀스럽게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하…. 헤네랄리페, 지는 해의 노을을 순백의 하얀 벽으로 한껏 받아내는 헤네랄리페 궁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언제나 해를 등지고 정원을 향해 서 있는 모습만 보아오던 그동안의 헤네랄리페는,
이 궁전의 반 밖에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래 Paseo de triste 를 거닐거나, 사크로몬테를 거닐때면 언제나 보이던,
그 순수하고 새하얗게 달빛 아래 빛나던 헤네랄리페는,
바로 이 부분 이었던 것이다!

아래쪽이 거의 낭떠러지 여서 2/3 쯤 난간을 따라 가니,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더는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돌아섰다.
하지만 무서움을 무릅쓰고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길 법한 정도의 상황을 견디며 난간을 따라 걸어가
헤네랄리페와 나란히 사크로몬테, 알바이신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의 기억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이런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여준 헤네랄리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마음 속으로 비밀스레 전하며,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했기에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테테리아 알리바바, 창가에 앉아서...

점점 사크로몬테가 가까워지고,
간간히 사람이 살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무허가 동굴도 보이고..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길은 다로강변을 따라 이어진 Paseo de los tristes 로 이어져 있었다.
내려오는 길 가에 시로 추정되는 글귀를 새겨놓은 돌들이 드문 드문 놓여져 있었다.
우리가 길을 내려오자 해가 거의 지고 있었고,
Paseo de los tristes 옆으로 올려다 보이는 알함브라가
서서히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길가의 테라자들도 불을 밝히고 가로등도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 전에 봐두었던 Darro 강 건너편에 새로 생긴 타파스 바 Ali baba 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과 틴토 데 베라노 한 잔에 타파로 나온 씬피자를 한조각씩 먹으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을 음미해 보았다.

이 바는 예전에는 공방 이었는데, 바 겸 테테리아로 바뀐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Paseo de los tristes 에서 바라보면,
창가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얼마 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곳이었는데,
역시 기대했던 것 처럼 내부도 멋지고, 그 안에서 내다보는 다로강과 Paseo de tristes 의 모습 또한 근사했다.

아직도 헤네랄리페를 만난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우리를
강 건너편 Paseo de los tristes 에서 사진으로 찍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우리가 서로 창가에 앉아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걸 웃으면서 지켜보는 노부부도 있었다.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그들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참 기분이 좋은 저녁이다..

건너편에 산책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점점 어두워지는 청록색 하늘을 바라보았다.  

 

 


행복으로 가득찬 삶을 위해...

돌아오는 길에는 Paseo de los tristes 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길래,
무슨 영화를 찍냐고 물어보니 Carnival 이라는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언젠가 스페인 영화 Carnival 이 완성되어 극장에 걸리는 날이 온다면,
이날의 산책과 묘지에서 만난 그라나다의 이야기들, 멋진 Silla del morro의 풍경과,
비밀스런 헤네랄리페와의 만남이 떠오르겠지?


그런 감사한 하루를 또 하나 선물 받아 가슴속에 꼼꼼히 새겨두고
또다시 내리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만 글을 마친다.

행복은 한발 한발 내딛는 나의 발걸음 속에 있다.
발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그러면 행복 또한 내게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묘비명에도 이렇게 새겨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Por una vida llena de feliz
행복으로 가득찬 삶을 거쳐서...

 

 

 

 

Los momentos del Cementerio de Granada, Mirador de Silla del Morro y Generalife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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