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의 어느 가을 저녁
그 날은 비가 조금씩 내리던 가을 이었다.
지난 가을과 겨울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정신없이 바빴다.
이 아름다운 도시, 그라나다에서 두문불출 작업에만 온 시간을 쏟던 그때,
문득 Tapas 나 먹으러 가자는 친구.
그래, 잠시 숨을 돌리자 싶어 우산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내가 좋아하는 Calle Zenete 를 따라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날 우리는 유난히 배가 고팠기 때문에 맛있는 Tapas 가 필요했다.
그때, 알바이신에 위치한 어느 Bar 가 생각났다.
Tapas 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번 꼭 가고 싶었는데,
갈 때 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한 번도 못가본 곳이었다.
마침 그날은 문을 여는 날, 아직 문이 열려있을 시간 이었고, 좀 멀긴 하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비를 맞아 반들반들해진 돌길을 올라 우리가 맛본 Tapas 는 맛은 있었지만,
배가 고픈 우리의 허기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고,
결국 우리는 Tapas 의 양으로 왠만해서는 뒤지지 않는 Calle Elvira 의 Bar Antigualla 로 갔다.
그곳의 타파는 샌드위치다. 그다지… 맛이나 질 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배가 고플 때 일단 배를 채우기로는 충분하다.
Bar Antigualla2 는 햄버거와 감자가 푸짐하게 더 많이 나오지만,
그곳까지의 몇십미터를 걸어갈 힘도 우리는 없었다. ^^;
우산을 찾아서...
그럭저럭 Bar Antigualla 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려고 하니, 비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 우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산을 첫번째 갔던 알바이신의 바에 놓고 온 것이다..
참고로 Bar Antigualla 가 있는 곳과 첫번째 갔던 Bar 가 있는 곳은,
알바이신 에서도 위의 끝, 아래의 끝,
방향에서도 정 반대 방향에 위치한…
그야말로 알바이신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서 비가 주룩 주룩 오는 알바이신을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진 알바이신의 돌길은, 빗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으로 곳곳에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좀 멀리 가야 하지만, 나는 워낙 알바이신을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상관 없었다.
단지, 비가 너무 많이 오지만 말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다.
알바이신은 특유의 울퉁불퉁한 돌길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끄러운 것도 조심해야 하고,
하이힐이나 바닥이 미끄러운 신발은 왠만하면 절대 비추지만,
또한 종종 짠! 하고 나타나는 개똥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알바이신을 다닐 때는 왠만하면 큰 돈은 가지고 다니지 말고,
목에 카메라를 걸고 '나는 돈이 많은 여행자다' 라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1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나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지만,
나보다 더 오래 이곳에 살았던 현지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알바이신을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알바이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그와 인접한 사크로몬테에 거주하는 집시, 히피 같은 이들에게서 오는 자유로움이 여행자들의 낭만과 섞여서
그 매력을 알게 된 이들로 하여금 더더욱 그곳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반면에 그로 인한 위험도 세상의 그 어느 곳이든 그런 것 처럼,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그곳은 좁은 골목길이다. 어두운 골목길이 안전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알바이신도 마찬가지이다.
여튼.. 내리는 비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금 무섭긴 했지만,
지나는 집집마다 밝은 불빛이 켜져있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나치니,
마음이 왠지 따뜻해졌다.
이곳의 길은 앞서 말했듯이 좁은 골목길이기 때문에,
창문도 가까이 마주하고 있고,
알바이신 지구는 아랍인들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아랍식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창 앞에 격자로 창살을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방법창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격자창은 집을 지을 때부터 함께 지어져서, 벽에다 따로 고정을 시키는 게 아니라, 벽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떼어 내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워낙에 예전부터 집시들이 많아서 이렇게 해놓은 걸까. ㅎㅎ
또한 이곳의 건축물들은 옆으로 긴 창을 낼 수 없다.
어느 정도 이상 폭을 가진 창을 낼 수 없고, 그 창 옆에 일정한 간격 을 두고 띄워서 또다른 창을 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의 크기가 비슷하다.
이런 작은 창문들 사이로 보이는 알바이신의 살아있는 삶이 나는 참 좋다.
걸어도 걸어도 자꾸 걷고 싶어지는 건 아마
이런 사람사는 냄새가 아직 이곳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중간 쯤 올라 산 니콜라스 전망대를 지나
내 친구 바바라의 집도 지나, 어느 골목의 모서리를 돌 때 쯤이었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모서리를 끼고 있는 집의 2층 창문에서 나는 피아노 소리인 듯 했다.
비오는 밤, 그림같은 알바이신의 골목길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는 건,
마치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달콤한 순간이다….
그 맞은 편 벽에 기대어 서서 한참을 그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리는 비가 피아노 연주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고,
나는 계속 비를 맞고 있었지만 그리 많이 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것 쯤은 괜찮았다.
가을 내내 작업을 해오며 그물에 꽁꽁 묶인 물고기 처럼 쪼그라들어있던 내 심장이
그 피아노 연주 소리에 그물을 뚫고 나와 넓고 깊은 바다속으로 헤엄쳐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음악을 듣다가 문득, Bar의 문을 닫는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아서, Bar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멀어지는 연주소리가 아쉬워 천천히 걸어가는 내 뒤로
점점 작아지는 피아노 소리가 여전히 비와 함께 알바이신의 밤을 적셔주고 있었다.
우산은 다행히 그곳에 있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모퉁이에서는 더 이상 피아노 연주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여전히 그곳에서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아름다운 가을 밤 조용히 비가 내리는 알바이신의 돌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귀를 기울이면 ...
이따금, 듣고있던 음악을 끄면, 고요한 창 밖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지금 알바이신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지금도 수많은 가난한 음악가들이 살아가는 이곳,
그들의 음악이 저 밤하늘 별처럼 흘러 반짝반짝 빛나는
그라나다의 아름다운 알바이신에서…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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