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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를 사랑하는 사람들, Peña 'La Plateria'

Granada days/Encanto

by priim 2013. 5. 1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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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플라멩코


플라멩코라는 춤을 처음 본 건, 영화에서였다.

참 우습게도 스페인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본 영화를 통해서.

영화 도쿄타워를 보면, 영화 속 한 여인이 스스로 독립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플라멩코를 배우고, 공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살사처럼 신이 나는 것도 아니고, 탱고 처럼 섹시하지는 않았지만, 플라멩코를 추는 여인의 그 눈빛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라나다에 처음 와서, 플라멩고 강습을 하는 곳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스페인에 와 있긴 한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플라멩고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집시들의 춤사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집시들의 춤사위가 그라나다의 사크로몬테 동굴 속에서 시작되었다.

 

코르도바를 가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각 지역마다 타블라오 플라멩고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모두 특색이 있다.

코르도바는 그 유명한 메즈키타의 아치모양을 본딴 줄무늬 아치로 둘러싸인 파티오에서 공연을 많이 하고, 그라나다는 사크로몬테의 동굴을 형상화 한 동굴 플라멩코가 많이 있다.  

 

Camino de Sacromonte 를 따라 걸어간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사크로몬테의 100점짜리 야경! ^^


집시, 그들의 이야기


집시, 그들은 본디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그 집시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간 곳이 사크로몬테이고, 그곳에 살면서도 그들은 사회의 일부로 합류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 학교를 보낸다 하더라도, 보내고 싶을 때 보내고 툭하면 안 보내는 경우도 많아서 그라나다 시 측에서 꽤나 골치를 썩는다고도 한다.

사회라는 틀 안에서 그들을 바라볼 때는 그들의 행동이 참 기이하고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살아온 방식이 있으며,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다른 그들만의 전통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의 그런 행동들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라나다에 본격적으로 집시가 들어온 것은, 카톨릭 세력이 무어인들로부터 그라나다를 되찾은 이후.

그라나다에 살고 있던 많은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종교재판을 피해 그라나다를 떠났다.  

그 라나다가 무어인들의 지배 하에 있을 때는 카톨릭, 이슬람, 유대교 등의 타 종교에 대해서 관대했기 떄문에, 지금의 레알레호 지역에 유대인이 거주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카톨릭 세력은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고, 마침 뿔뿔이 흩어진 스페인을 한 데로 통합시킨 직후라 본보기도 필요한 시기이고 했기 때문에, 이는 비 카톨릭 세력에 대한 종교 재판으로 이어졌고, 레알레호의 산토 도밍고 성당 앞에서 종교재판을 치른 자들 중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자들은 지금의 비브람블라 광장, 츄러스가 맛있는 평화로운 그 광장으로 끌려가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 어마어마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결여와 나의 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이기적인 마음이 언제나 다양한 형태의 이유가 되어 사람들을 죽일 뿐.

 

어쨌든 그렇게 많은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그라나다로 입성한 군부대를 따라 집시들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크로몬테와 무슬림들이 떠나간 버려진 알바이신에 살아가기 시작했고, 알함브라가 재조명받기 전까지는 알함브라에도 집시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유럽을 여행하다 집시를 만나거나, 혹은 그들에게 지갑을 도둑맞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집시라면 혀를 내두를 것이다.  

뭐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집시들의 이야기가 하도 많아서, 손금을 봐주고 돈을 요구 한다거나, 풀을 뜯어 팔면서 지갑을 훔쳐 간다거나 하는 등의 좋지 않은 이미지로 집시들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나는 또 사회 속에서 사회인으로써 나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으니까.

이러한 집시들에 대한 경계는 예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라나다의 레알레호에 위치한 Museo de Casa de los Tiros 를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집시들에 관련된 자료 중에는, 한 집시 여인이 목과 손발을 벽에 결박당한 채, 눈 앞에 줄에 매달려 있는 금붙이를 바라보는 그림이 있다. 이는, 당시에도 도둑질을 일삼던 집시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그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고,

그들이 느끼는 슬픔과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같은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는 그들은 또 전해지고 전해지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 뿐인데,

그 들의 삶의 방식은 신석기 혁명 이후 한곳에 거주하기 시작하고 사회라는 체계를 발전시켜 살아온 그들 이외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는 결코 사이좋게 공존하기 힘든 것이었으니, 사회 속에 몇 안되는 집시들에 의해 우리가 받는 고통 보다는, 대다수가 속한 사회 속에서 본인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거부당하며 살아온 집시들이 받아왔을 고통이 훨씬 컸으리라 짐작해 본다.

 

Carlos V 궁전에 위치한 미술관에 관한 글에서 소개한 작품 중 집시들의 Zambra 를 표현한 그림이 있다.

곤 히 잠들어 있는 듯한 아기가 상자 속에 뉘여져 있고, 그 옆에서 집시여인이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주위에 사람들 역시 광기어린 눈으로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하는 장면이다. 그런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잠들 수 있는 갓난아기는 세상에 없다. 아마도 그 아이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그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음악으로 승화된 집시들의 플라멩코가 바로 Zambra 이다.  

아마도 그라나다 사크로몬테의 동굴 속에서 집시들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비명에 가까운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내뱉고, 그 고통을 날려버리기 위해 추었던 춤사위가 바로 지금의 플라멩코의 기원이 아닐까.


Peña 'La Plateria' 의 입구에 들어서서 바라 본 알함브라


Peña 'La Plateria' 가 어디야?


플라멩코가 황금기를 맞이한 도시는 세비야 이다. 하지만 플라멩코의 기원, 처음 그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한 집시들의 영혼은 이곳 사크로몬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사크로몬테의 동굴 플라멩코는 나에게는 너무 비쌌다.

더군다나 저렴한 가격에 보았던 작은 동굴 플라멩코는 플라멩코 공연을 처음 보는 나로써는 신기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번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학원 친구들이 다같이 플라멩코를 보러 간다고, 나보고도 같이 가자고 했다.  

"알았어. 생각해볼께. 저녁에 학원 앞으로 오면 되지?"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친구와 집 근처 바에서 음료를 한 잔 마시면서, 까마레로에게 친구들이 오늘 보러 간다는 플라멩코 공연장에 대해서 물어봤다.

"거기 괜찮아? 보러 갈 만해? 어디 있는지 알아?" 

그러니, 그 친구는 "응, 괜찮아. 마침 잘 됬다! 그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플라멩코 클럽인데, 저기서 친구분들과 한잔 하고 계신 수염난 양반이 그곳의 회원이야." 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 우. 그래서 하얀 수염이 난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 그곳의 플라멩고는 멋지다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세히 지도를 보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오늘 공연하는 친구들은 아마 누구누구가 노래를 하고, 누구누구가 춤을 출꺼야! 아주 볼 만할껄! 이라며 추천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친구들과 함께 가게된, 알바이신의 낮은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한 플라멩코 클럽, Peña 'La Plateria'.

 

알 바이신의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알함브라가 아주 근사하게 보이는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선 Peña 'La Plateria' 에서 나를 처음 반겨준 건 여러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넓은 안뜰 이었다.  

그 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의 야경이 그야말로 기가막혔고, 하늘에 떠 있던 큰 달이 꼭 내 머리 위로 떨어질 것 처럼 가까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Peña 에 딸려있는 바에서 그라나다의 여름 음료, Tinto de Verano 를 한잔씩 주문했다.

음~ 향긋하고 달콤한 Tinto de Verano 가 멋진 야경과 시원스레 열린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들려오는 플라멩코 기타소리와 함께 근사한 또 하나의 순간을 나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9시 반쯤 되어서 입장이 시작되었다. 표는 그곳에 가서 구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살라!!!!!!!!!!!! 우와.....  

그 거대함에 노라기 보다는, 그 근사한 실내 인테리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벽마다 도자기로 꾸며져 있는 플라멩코 칸타도르와 바일라도르들을 그린 그림들!!!!!!

여기저기 걸려있는 거대한 아줄레호 도자기 접시와 크기가 엄청난데 또 엄청 멋진 모양의 샹들리에!!!!!!

무대 뒤에 그려져 있는 바일라도르의 그림 또한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여긴 그냥 플라멩코를 음악으로 즐기는 게 아니라, 소규모의 플라멩코 미술 갤러리에서 공연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Peña 'La Plateria' 의 목요일 플라멩코 공연의 한 장면!


'La Plateria' 의 열정, 그들이 선사하는 최고의 무대!


그리고 잠시 후 시작된 플라멩고.

 

나는 그라나다에 온 이후로 이곳에서 처음, 그리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플라멩고 무대를 보았다.

플라멩고는 기타를 치는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 노래를 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으로 이루어 진다.  

보통 플라멩고의 처음은 기타를 치는 사람과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 시작을 하고, 박수를 치는 사람, 그 다음 마지막으로 춤을 추는 사람의 등장으로 하이라이트를 맞이한다!

플라멩고에는 수많은 박자가 있기 때문에, 플라멩고를 볼 때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좋다.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이 손바닥으로 만들어내는 그 박자는 수십가지의 박자가 수시로 변하는 화려한 스킬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박수는 치고 싶어도 참는 것이 예의.

그 리고 낭만적인 것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플라멩코의 구슬픈 기타소리에 맞추어 처절한.. 거의 절규에 가까운 플라멩코 노래가 시작된다. 머리에 핏대가 설 만큼 한참동안 처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칸타도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한을 담아내는 우리 음악인 판소리에서 느껴지는 정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한참 그렇게 노래를 하다가 드디어 바일라도르, 춤을 추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그 춤을 추는 사람의 눈빛 하며 손동작 하나 하나 하며, 그 얼마나 강렬한지!!!!!!!!

그 눈빛은 너무나 비장하고 서슬이 퍼래서 슬픔마저 느껴진다.

 

잠시 휴식 시간이 되고 2부 공연이 이어진다.  

휴식 시간에는 테이블 별로 타파를 주문할 수도 있고,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무료로 주어지는 샹그리아를 마실 수 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나면 시간은 새벽 1시가 다 되어 간다.

 

한 번은 Peña 'La Plateria' 에서 남자 바일라도르의 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공연도 너무 감동적이어서, 공연이 끝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젊은 남자 플라멩코 바일라도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랬던 것이기도 하다! ㅋㅋㅋㅋ

그런데 그 사진을 찍어준 독일 친구가 사진을 잊어버렸는지, 보내줄 생각을 안한다. ㅡ,.ㅡ 아놔. ㅋㅋㅋ


Peña 'La Plateria' 의 목요일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지는 살라의 모습. 마치 멋진 플라멩코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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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nida de Constitucion 에 위치한 여러 동상 중, 그라나다 출신의 스페인 대표 시인이자 극작가인 Federico Garcia Lorca 의 동상


Peña 'La Plateria' 의 뿌리,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두 명의 예술가


Peña 와 Tablao 는 다르다.

Tablao 가 플라멩코 공연장이라면, Peña 는 동아리, 혹은 모임에 가깝다. 

단순히 쇼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플라멩코를 가르치기도 하고, 함께 연구를 하기도 하는.

굳이 플라멩코가 아니어도 Peña Real Madrid 라던가 하는 모임이 많이 있다.  

 

1949년 설립된 Peña 'La Plateria' 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플라멩코 Peña 이다.  

그 유래를 이야기 하자면, 그라나다를 사랑한 두 명의 예술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초 최고의 스페인 음악가로 알려진 Manuel de Falla 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연극의 혁신적인 장을 연 Federico Garcia Lorca 가 그 주인공이다.  

 

Manuel de Falla 는 '스페인 정원의 밤' 이라는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이버 캐스트 참조)

스 페인의 녹턴이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음악은, 1부: 헤네랄리페 에서, 2부: 먼 옛날의 무곡, 3부: 코르도바의 시에라 정원에서 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목을 보아도 알 수 있고, 곡을 들어도 알 수 있듯이 Falla 는  스페인적인 것,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은 일부러 꺼려하고 피했던 플라멩코를 매우 사랑했다. 집시들의 음악이라고 알려진 플라멩코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아마 당시로써는 꽤나 유명한 작곡가에게는 모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라나다에 살면서, 지금의 알함브라 내에 있는 아랍식 목욕탕이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던 Taberna de Polinario  에서 열렸던 작은 모임에 열심히 참가하면서 그의 친구들과 플라멩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임에 참가했던 또다른 예술가가 하나 있었으니, 그라나다에 오면 버스에 그려진 그림으로든, 공원 이름으로든, 동상으로든 꼭 한 번 쯤은 보았을 그 유명한 시인이자 극작가 Federico Garcia Lorca 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플라멩코 음악 중에서도, 처절하고 슬픈 음악을 일컫는 Cante Jondo 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그들에 의해서 그라나다에서 Concurso del Cante Jondo, 즉 깐테 혼도 경연대회가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민요를 떠올려 보면 될 것 같다. 서민들 사이에서 불리던 판소리와 민요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 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하나인 임권택 감독님이 판소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그에 대한 사랑을 영화 서편제에 담아내면서, 잊혀져 가던 우리 소리의 가치와 그 아름다움에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장 깊숙한 우리의 것을 담아낸 그 영화는, 세계도 주목하게 되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 였을 것 같다.

집 시들 사이에서나 불리어지던 플라멩코 음악보다 다른 나라의 음악들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나타내고 그들 자신의 것은 잊어가고 있을 때 쯤, Falla 와 Lorca 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깐테 혼도 경연대회를 주최함으로써, 잊혀져 가던 그들의 소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신들의 정서가 담긴 그 소리를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 깐테혼도경연대회는 플라멩코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고, 상을 탄 자들 중에는 11살 짜리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상을 탄 기타리스트 중에 Andres Segovia 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우리나라 기타회사 이름이 Segovia 인 건가? ^^;

(난 처음에 스페인의 도시 Segovia 가 기타로 유명한 도시인 줄 알았다. 기타 브랜드 Segovia 가 우리나라 회사라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음;)

 

그렇게 그라나다 사람들은 플라멩코를 사랑한 예술가들에 의해 플라멩코 음악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 Concurso de Cante Jondo 는 Lorca 의 유명한 시집, Poema del Cante Jondo 에도 자세히 묘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진 당시의 역사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은,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띤 전쟁으로, 그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바로 이 전쟁을 묘사한 그림이다.

 

스 페인은 1930년대 당시, 유럽 내에서도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으며, 스페인 국민들에 의해 공화당에 의한 정부가 설립 되었다. 그리고, 당시 장군이던 프랑코가 이 정부에 대해 모로코에서 데려온 군사들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화가난 시민들이 정부군에 자발적으로 합류하고, 무기를 받아 스스로 싸우는 등, 시민과 정부군의 합류에 의해 쿠데타는 진압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파시즘이 형성되고 있던 이탈리아와 독일이 프랑코를 지지하였고,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코의 연합군이 시민과 정부군을 제압하여, 그 이후 1975년까지 수십년간 스페인은 프랑코의 독재정권에 시달리게 된다.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이 스페인을 떠나갔거나, 사라졌다.

프랑코는 카톨릭 전통을 엄격하게 따르는 독재자였으며, 타유럽지역에 비해 스페인에 아직도 많은 카톨릭 전통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 이러한 아픈 독재의 흔적이기도 하다.  

 

Federico Garcia Lorca 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이자 극작가였고, 동성애자 였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띈 작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코 정부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워낙 죽은 사람이 많아서 그의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라나다 근교 알푸하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Lorca 는 그라나다에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다.

그가 처벌을 당한 이유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그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으며, 그의 죽음 이후 Falla 는 프랑코 정부로부터 스페인 음악 연구원의 원장 자리를 맡게 되었지만, 그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 Falla 는 3년 후 스페인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간다.  

떠나는 Falla 에게 사람들이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묻자, 그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다 동의할 때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 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옆, Carmen de Martires 근처에는, 마치 일주일 후 주인이 돌아올 집인 것 처럼,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 그의 빈 집 만이 Casa Museo de Manuel de Falla 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그들이 뿌린 씨앗으로부터 돋아난 작은 새싹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플라멩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모임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설립한 'La Plateria' 라는 Peña 였다.


Peña 'La Plateria' 를 나오는 길에 바라본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알람브라.


Ole~!!! Peña 'La Plateria' !!!!!


플 라멩코의 오리지날리티를 유지, 보존하고, 양질의 플라멩코를 착한 가격에 공연으로 보여주자는 그들 덕분에, 그라나다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나 Peña 'La Plateria' 에서 20유로 짜리 같은 8유로 짜리 공연을 감상할 수 있고, 그라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플라멩코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목요일의 Peña 'La Plateria' 는 언제나 북적인다.  

다른 날에 있는 활동은 Peña 'La Plateria' 의 회원이 아니면 참가하기 힘들지만, 목요일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새 벽까지 이어지는 플라멩코 공연을 모두 보고 걸어 돌아오는 알바이신의 좁은 골목 그 위에 살짝 고개를 내민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Peña 'La Plateria' 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보고 나오던 그날 밤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플라멩코가 뭔지도 아직 잘 모르던 그때도, 그 심장의 쿵쾅거림과 가슴 깊이 저며오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생생했고, 바일라도르의 눈빛과 바닥을 마치 부숴버릴 듯이 쿵쿵 내려 꽂던 발놀림이 잊혀지지 않았다.

알바이신의 밤길을 걸어오면서 우리는 바일라도르의 춤사위를 따라 추기도 하고, Ole! 를 외치며 박수를 치기도 하며, Peña 'La Plateria' 가 선사해 준 목요일 밤의 판타지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은  Falla 의 음악을 찾아 들어봐야 겠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스페인은, 그들이 사랑했던 플라멩코는 어떤 모습일지,

그가 친구를 떠나보내고, 그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도시. 그가 사랑한 Granada 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밤거리를 한번 거닐어 봐야지.

 

어쩌면 플라멩코를 사랑하고 그라나다를 사랑했던 예술가, Falla 와 Lorca 를 그리워하는 헤네랄리페의 한숨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A LA PEÑA DE 'LA PLATERIA' / 페냐 데 라 플라테리아


Peña de la Plateria

la de la Alhambra Sultana,

la que se asoma al Rio Darro

entre jazmines de plata.

 

은빛 자스민 꽃 사이로

다로강을 바라보는

알람브라 술탄의

페냐 라 플라테리아 

 

Eres balcón de la Luna

con nostalgias de la Vela

corazón del Albyzín

frente adalbes de canela

 

너는 밤을 추억하는 

달의 발코니 

알바이신의 심장

계피의 adalbes 맞은편에


¡Ay!... Peña de la Platería

sones de yunque y viento,

bermellones de las fraguas

y Soleá de silencios.


아!... 페냐 라 플라테리아

모루와 바람의 소리들

노의 선홍빛

그리고 침묵의 고독


Plato, geranio y mirto

de siguirilla y candela,

la de los cantes por tientos

del vino rancio y la cueva.

 

요리, 제라늄과 도금양

촛불과 세기디야

오래된 와인과 동굴

수많은 플라멩코 음악


De la Toná y de la Debla

de las Granainas de fuego,

del arpejío y misterio

tertulia de arte y mimbre

y madrugadas de ensueño

 

토나와 데블라

그라나다 사람들의 불꽃

아르페지오와 미스테리오

예술과 버드나무,

그리고 꿈에 잠긴 새벽의 모임


Eres Catedra del arte

eres silencio y sentío,

eras rumor y nostalgia

palmas, sabor y tronío.


너는 예술의  대성당

너는 고요와 슬픔

너는 웅성거림과 향수

박수, 맛과 사치


Porque Tu... "La Plateria"

la del cante y de Granada,

la que llora con desgarro

entre espejismos de Zambra.

 

왜 너는...

잠브라의 환영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있는가.

플라멩코, 그리고 그라나다의

라 플라테리아


Hoy le recuerdo con alma

aquella vieja Platería,

que fué refugio de artistas

del cante jondo y la vida.


오늘, 나는 생생하게 그대를 기억한다.

깐테혼도 예술가들의 천국, 그리고 삶 이었던

저 오래된 플라테리아를.


Por eso mi Peña amiga

la de la Alhambra Sultana,

la que amanece llorando

con sabor a mejorana,

le dedico mi poema,

con la alegría en el alma,

a la Gran Platería Flamenca

de Andalucía, el Mundo y Granada.

 

그리하여

알함브라 술탄의

울부짖으며 밤을 새우는

박하 맛을 가진

나의 벗 페냐,

그대에게 나의 시를 바친다,

영혼의 즐거움으로,

안달루시아, 세계 그리고 그라나다의

그란 플라테리아 플라멩카에게.


POESIA DE ATAULFO "GRANADA"

AÑO : 1995


1995년, Ataulfo 의 시



정보 : Peña 'La Plateria' 홈페이지, 페이스북 및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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