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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오리와 네 마리 공작새, Carmen de los Martires

Granada days/Encanto

by priim 2013. 4. 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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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얻는 방법


스무살을 넘기고 단체생활보다는 개인생활에 익숙한 도시 구성원이 되면서,

한동안 생일이란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날이라기 보다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게 헤어지는 날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매 달 마다 강당에 모여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도 있었고,

생일 당일이 되면 같은 방을 쓰는 선배 후배 친구들끼리 모여 조촐하지만 따뜻한 생일파티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이십대를 보내면서 개인의 신상정보는 SNS를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그 때의 생일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얼굴보고 인사하는 그 친구들은 내 생일을 알지도 못하고, 나도 그들의 생일을 알지도 못하지만,

생일 당일이 되면 어디선가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자들이 도착하고, 그 몇 줄 글자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곤 했었다.

 

재작년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여차저차해서 물 좋고 공기 좋은 내 고향 충주에서 초등학교 과학보조 교사를 하면서 지냈었다.

다른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정글을 지나온 느낌이었다면, 어린아이들이 매일같이 뛰어노는 넓은 운동장과,  

매주 수요일마다 다함께 모여 배구를 하는 선생님들이 매일 웃으며 인사하는 그곳은 그야말로  

누군가가 소중히 가꾸고 다듬어 놓은 정원 같았다.

 

그 때, 길어야 1년 함께 지낸 선생님들이 나 몰래 준비해주셨던 써프라이즈 생일 파티가 지금도 기억난다.

 

잠 시 1층 교실로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받고 오후의 조용한 학교 복도를 가로질러 복도 끝 별관 특수반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예쁜 케익과 폭죽, 그리고 근사한 기타 연주에 맞추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따뜻한 사람들.

어떻 게 그때 그 기분을 표현해야 할런지. 그저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시도 때도없이 지어대는 웃는 표정 만으로는 진심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말 얼굴의 근육이 아플 정도로 활짝 웃었던 나. 그리고 모두의 얼굴에 번져나가던 행복의 냄새.

 

그런 너무나도 고마운 생일 파티를 받고 그 이듬해 초에 나는 스페인으로 왔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갖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자.  

이 깨달음은 내 인생에 제대로된 첫 단체생활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때부터 늘 되뇌이는 말이고, 언제나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쉽게 지켜지지가 않는다.

 

특히나 이곳에서, 나름 몇달이 아닌 장기간, 1년이 넘게 이곳 스페인에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헤어짐이 찾아오고,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물론 그 헤어짐이란 서로 다른 곳에 있게 된다는 공간적 헤어짐일 뿐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점점 새로운 만남에 마음을 닫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에 있고, 그들은 어디론가 가고,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기 전에 나는 나를 먼저 지켜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언제나 먼저 마음을 열어 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고,  

그럴 때면 또다시 나는 잊고 있었던 그 말을 기계처럼 되뇌인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갖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까페 콘 레체와 함께 먹은 한 살


스페인에서 한 번의 생일을 보냈다.  

 

12월 내 생일은 한국에 있으면 언제나 쌀쌀한 초겨울. 가끔은 눈도 내리는 시기이지만,

여기 햇볕이 뜨거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에서는 모든 식물들이 풍부한 색채로 물들어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깊은 가을이다.

 

나는 혼자 낯선 곳에서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를 때 생일을 보내야 할 때는,  

습관적으로 며칠 전부터 내 생일이 다가온다고 주위에 떠벌리고 다닌다.

다른 날은 몰라도 생일은, 혼자 보내긴 죽어도 싫으니까.

 

그때 내 생일을 함께 보낸 한국인 친구가 하나 있다.

스페인으로 공부를 하러 왔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멕시코로 변경을 하게 되어  

조만간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된 그 친구는,

이곳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한국인 친구들처럼 나보다는 어렸고, ^^;

하지만 나이보다 훨씬 깊은 마음과 됨됨이를 가진 참 좋은 친구였다.

 

생일을 맞아 우리가 간 곳은 먼저, 알함브라에 있는 파라도르!

 

파라도르란 스페인 전역에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스페인 정부에서 사들여서  

호텔로 개조하여 운영하는 국영 호텔로,

알함브라 내에 위치한 그라나다 파라도르는 스페인에서도 제1호 파라도르라고 알고 있다.

 

하룻밤 숙박비만도 나같은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너무너무 비싼 이곳에 숙박을 하러 간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파라도르의 지하 식당의 테라자에 갔다!

 

하룻밤 묶지는 못해도, 그 근사하다는 파라도르의 멋진 뷰를 눈요기 삼아  

3.4유로 짜리 비싼 커피 한 잔의 사치 정도는 부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른 날도 아닌 내 생일인데! ^^

 

하늘은 내 편인지 날씨도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름다운 가을 날!  

파라도르의 정원으로 들어가 식당 겸 까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사람이 별로 없는가 싶더니, 넓은 전창으로 테라자를 내다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테라자에 위치한 몇 안 되는 테이블에는 어김없이 손님이 Full 이다!

 

다행히 마침 테라자의 구석에 한 자리가 비어, 우리는 햇빛도 잘 들고 나무 그늘도 적당히 진

멋진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과 음료 한 잔을 주문했다!

 

코끝을 스치는 헤네랄리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 바람과

여과없이 공평하게 구석구석 12월 초까지 내리쬐는 고마운 안달루시아의 태양!

입 안에 머금은 따뜻한 까페 콘 레체의 향기와 함께 그라나다의 늦가을을 음미해 본다.

마주 앉아있는 친구와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파라도르 까페의 테라자는 알함브라의 앞쪽 숲으로 길게 나와 있고,

앞으로 펼쳐진 알바이신과 오른쪽으로 한결 가까이 보이는 헤네랄리페를 보면서

알함브라의 품에 안겨 마시는 카페 콘 레체는 그야말로...

그라나다의 선물. 이라고 하면 표현이 되려나? 

 


 


나의 마흔 네번 째 노을, Carmen de los Martires

 

부드러운 카페 콘 레체의 향을 머금은 채  

뜨겁지도 모자르지도 않은 따뜻한 가을 햇살이 손등에 간질간질 거려 우리는 또다시 길을 나섰다.

 

알함브라의 입구에 조금 못 미쳐 살짝 돌아가면,

그곳에는 어린 왕자의 마흔 네 번째 노을처럼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이 있다.

 

그곳의 이름은 Carmen de los Martires.

 

자세한 유래는 모르지만, 예전에 그라나다가 무어인들의 지배하에 있을 때,  

그곳은 카톨릭 교도들의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그 후 다시 카톨릭 세력이 그라나다를 차지하게 된 후 이곳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었다던가...

그 정원의 입구에는 돌로 새겨진 수많은 문구들이 그곳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는데,

그곳을 찾았던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곳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남긴 글들을 조각하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 쯤은 몰라도 상관없다.

 

이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에서는 한번 쯤 길을 잃고 돌아다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햇볕이 잘 드는 어느 마당에서는 두 마리 아기고양이가 으르렁 거리며 서로 장난을 치고 있다.

한 순간 나와 마주친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그 고양이들을 따라가 가다보니,  

눈 앞에 그라나다 레알레호 지구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사람은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잘 다듬어 놓은 고요한 정원에 앉아 잠시 그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보면,

어느 샌가 내가 밟고있는 그 땅에 푸른 융단처럼 황금빛 이끼가 근사하게 펼쳐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잘 다듬어진 나무 사이로 요리 조리 황금빛 융단을 밟으며 계속 가다 보면,  

귀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라나다에서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보았을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높은 나무들에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분수가 하나 나온다.  

주변의 나무들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마치 핀조명 처럼 분수를 내리쬐는 모습은 

마치 어디선가 작은 아이들이 나타나 깔깔대며 장난을 치며, 왈츠를 출 것만 같은 같고,  

저만치 앞서 가던 두 마리 고양이는 어느 샌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환상적인 분수를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가 보면, 

저만치 작은 인공폭포가 보이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폭포 뒤로 비밀스러운 작은 동굴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동굴을 들여다 보다가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마리 공작새!

이런 곳에 공작새가 있다니?! 하는 생각에 얼른 계단을 올라가 공작새를 쫓다 보면  

어느 새 한 마리 두 마리 공작새들이 눈에 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좀처럼 쉽게 눈에 띄어주지는 않는 공작새를 찾아 천천히 정원을 거닐어 본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그곳에는 작은 연못과 연못의 가운데에는 동화 속 오래된 성의 미니어쳐 같은 작은 탑 모양의 구조물이 나오고,

고개를 구부려 두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것 같은 그곳에 들어가 연못 주위를 둘러보면,

신기하게도 그 높고 외딴 연못에 두 마리 오리가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런 외딴 곳에 단 두 마리 살고있는 저 오리들은 조금 쓸쓸하지 않을까.

마치 밤이 되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연인이 되어 이 무너져가는 탑 안에서 사랑을 나눌 것 같은 두 마리 오리들을 바라보다,

문득 수컷 공작새가 눈에 띄어 뒤를 따라 내려가보니,

그곳에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근사한 자연 정원이 펼쳐져 있다.

 

이걸 정원이라고 해야 하나, 숲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사람의 손길이 닿았으니 정원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규모만 따지자면 이곳은 작은 숲에 더 가깝다.

길이 나 있으면 가보면 된다. 길을 따라 걷자니,

가을에 흠뻑 물든 그라나다의 전경이 발걸음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춰서 감탄하고.. 또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춰서 환호성..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세상에는 왜 이리도 적은 걸까를 안타까워하며 올라가다 보면,

가을에 물든 수많은 그라나다의 나무들 뒤로 그림처럼, 정말 그림처럼 서 있는 알함브라의 또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한 정원


잠시 그곳에 머물러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엄마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신다.

우리 집 마당은 이곳 정원처럼 넓지는 않아도, 엄마의 애정이 담긴 수많은 식물들이 심겨져 있으며,

아침마다 우리 엄마는 그 식물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내곤 하신다.

평소 감정 표현에는 오히려 다소 무뚝뚝한 편에 가까운 엄마의 이런 묵묵한 애정 표현은,

우리 집 마당에 심겨진 수많은 식물들에 고스란히 전해져,  

시장에서 몇백원 주고 사온 모종이든, 산책하다 예뻐서 퍼다 심은 들꽃이든 튼튼하게 자라서

우리 집 마당을 언제나 아름답게 해주고,  

마당을 지나며 그 식물들을 볼 때 마다 그들을 통해 나에게 전해오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이런 엄마의 정원, 엄마의 마당을 참 좋아한다.

 

안달루시아의 가을, 그 한 가운데에서 문득 엄마의 손에서 나던 그 흙 냄새를 느껴본다.  

이 정원도 오랫동안 누군가의 정성어린 사랑을 받아 이렇게 가꾸어 졌겠지.

 

그리고 그 누군가의 사랑이 정원에 심겨진 식물들을 타고 흘러  

이곳에 살고있는 고양이들과, 공작새들, 그리고 작은 연못에 살고 있는 두 마리 오리에게도,

그리고 여기 서 있는 나에게도 전해지는 거겠지.  

 




두 마리 오리와 네 마리 공작새, 그리고 두 마리 아기 고양이와 함께 춤을...


가슴 가득 그 사랑을 담아 내려오다 문득 눈 앞에 펼쳐진 근사한 자연의 살롱을 마주한다.

아까의 분수와는 또다른 커다란 분수와 분수를 중심으로 광장의 네 귀퉁이에는  

대리석으로 빚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이곳이라면 내가 춤을 추어봐도 되겠다.

 

두 마리 아기 고양이도, 네 마리 공작새도, 두 마리 오리도  

해가 질 때면 그곳에 모여 노을을 바라본다던가.

밤하늘에 별이 뜰 때면 언제나 그들의 시끌벅적한 파티가 그 살롱에서 열리지만,

그 정원의 크기가 너무 넓고 그 숲이 너무 깊어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던가.

 

그렇게 나는 나의 서른 몇번째의 생일을  

어린 왕자의 마흔 네 번째 노을과 같은 Carmen de los Martires 와 함께했다.

 

그곳에서 바라 본 마흔 네 번의 노을은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쓸쓸함과 벅차오름의 그 사이에 존재하는 그 기분을 나는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흔 네 번의 노을을 보았다고,

그 모든 노을이 같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 모든 날들이 같지도 않았을 테니까.

 

한 장의 똑같은 사진 마흔 네 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내용이 씌어진 마흔 네 페이지의 일기장.

 

Carmen de los Martires 에서 바라보았던 마흔 네 번의 그라나다 처럼.




Los Momentos del Carmen de los Mart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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