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아주 좋은 날은 그곳을 걷는다.
알바이신처럼 비탈지지 않은 완만한 경사에 정면에 눈덮인 새하얀 시에라 네바다가 내내 보이는,
관광객들이 많은 알바이신 보다는 다소 조용해서, 산책을 하면서 햇살을 즐기기에 딱 좋은 그 곳.
그라나다의 옛 유대인들이 살았던 지구, 바로 레알레호다.
알바이신과 레알레호는 알함브라 궁전을 사이에 두고 각각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알함브라가 궁전이 되기 전부터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살았고, 반대편에는 무슬림들이 살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알함브라를 그 사이에 지어두고 분쟁을 막으려 했던 게 아닐까.
레알레호에도 여전히 옛 양식의 건물들이 남아있지만, 알바이신처럼 지구 전체가 그런 건물로 채워진 건 아니다.
이곳은 어느 정도 현대화된 곳이고, 현대화라고 해봤자 몇백년된 건물이 아닌 것 뿐이지만. ^^;
그래도 어쨌든, 굳이 알바이신과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만들어진 건물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알바이신 보다 여기에 학생들이나 현지인들이 더 많이 살고, 더 많이 놀러 오는 곳이라는 점.
그라나다에 와서, 알바이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느꼈을 때,
유대인 지구 레알레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숨겨둔 보물지도를 발견한 것 같았달까?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지구에는 생각보다 구석 구석 보물같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이 숨겨져 있었다.
그랑 비아의 끝에 위치한 이자벨라 카톨리카 여왕과 콜룸부스의 동상이 있는 곳 뒤로 나 있는 길 중 왼쪽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그곳이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레알레호가 되겠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구석구석 한번 걸어가 보자.
내 기억 속의 레알레호
처음 이 구역에 들어왔을 때는 작년 봄이었다.
그때는 아직 쌀쌀해서 햇살이 좋은 날이면 광장에 앉아서 햇빛쬐기(Tomar sol)에 한창이었고,
그저 해를 쫓는 해바라기처럼 햇살이 있는 곳을 따라 걷다가 들어간 곳이 바로 그 거리였다.
저만치 앞에 보이는 시에라 네바다와 거리의 옆 골목 골목으로 들여다 보이는 비밀스런 풍경들이 왠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이 완만한 길을 따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시에라 네바다에 닿을 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걷고 걷고 또 걸어 한참을 걸었었다.
물론 시에라 네바다에 닫지는 않았지만, 길의 끝에 다다라서는
탁 트인 전경과 한층 더 가까운 시에라 네바다와 넓은 하늘을 느낄 수 있었다.
5월이면 열리는 Cruz de Mayo 가 되면, 특히나 이 구역은 아름다운 십자가 장식들과 그것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작년 5월에 그 축제가 열렸을 때, 이 곳에 있는 Campo de Principe 라는 넓은 광장에서는,
골목 골목에 아름다운 십자가를 테마로 한 장식들과, 흥겨운 음악소리,
그리고 그에 맞춰 둘씩 짝을 지어 흥겹게 세비야나를 추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했었다!!
세비야나는, 플라멩코보다 쉬운, 플라멩코의 대중화 버젼? 정도랄까.
남녀가 짝을 지어 추는 춤인데, 동작 또한 어렵지 않아서,
먼저 나무에서 사과를 따고, 그 사과를 먹고, 반대편 바닥으로 버리고...
이 세 가지 동작만 익히면 어렵지 않게 출 수 있다고 들었다. ㅎㅎㅎ
올 5월에는 나도 꼭 세비야나를 한번 춰볼 수 있기를! ㅋㅋ
사진 : 2012년 5월 매해 그라나다 전역에서 열리는 Cruz de Mayo 축제 때의 레알레호, Campo de Principe.
얼마 전에는 그라나다에 사는 볼리비아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볼리비아 음식 파티? 를 레알레호 구석의 어느 바에서 했었다.
그라나다는 작은 도시이지만 규모에 비해 굉장히 글로벌한 도시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 각 대륙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특히나 페루, 볼리비아 등의 남미 사람들과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람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꽤 많은 편이다.
물론 다른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튼간에 그때 레알레호 구석에 위치한 빈티지한 느낌의 바에서 푸짐하게 먹었던 볼리비아 음식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속이 텅 빈 만두처럼 생긴 빵을 쪼개서 거기에 음식을 넣고 먹는 것도 있었는데, 먹는 방법이 재미있었고, 맛있기도 해서 넘 좋았다. ^^
마침, 그때가 구정 설이라서, 그라나다의 한국친구들과 모여서 만두를 만들고 먹고 하느라
너무 배가 불러서 많이 먹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아쉽다. 아. 행복했던 그때. ㅋㅋㅋ
레알레호에도 맛있는 타파를 주는 바가 많이 있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바는, 한번 음료를 주문하면 무조건 타파를 세개씩 주는 어느 바다. ^^
이곳은 한번에 무조건 타파가 작은 접시에 3개씩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타파를 맛볼 수 있는데, 단점이 있다면 한두명이 가나 세네명이 가나 늘 타파는 세개씩 이라는 거다. ㅋㅋㅋ
고로, 이곳은 둘이 있을 때나 최대한 셋이 있을 때만 간다. 흐흠! ^^
* 위의 사진 : 한번에 타파를 세개씩 먹을 수 있는 바. ^^
왕에서 집시까지, 그라나다의 역사 박물관 'Museo de Casa de los Tiros'
타파를 세개 주는 바의 맞은편에는 그라나다와 스페인 왕조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옛 무슬림 귀족의 대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이 박물관의 이름은 Museo de Casa de los Tiros.
이 박물관은 앞서 말했듯 무슬림 귀족의 대저택을 그라나다 주정부에서 압수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건물 자체는 16세기에 지어졌다.
정면에는 창이 별로 없고, 제일 위 층 부분에 대포를 발사하기 위한 창이 몇개 뚫어져 있으며,
잘 찾아보면 가문의 문장인 하트 모양을 이곳 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는 그라나다라는 도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많이 담겨져 있다.
알함브라와 알바이신을 통해 접하는 것만이 아닌, 또다른 그라나다. 좀 더 가까이 그라나다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다.
여기에 담겨있는 역사는 주로 그라나다가 이자벨라 카톨리카 여왕의 손에 넘어온 후, 즉 카톨릭 세력이 그라나다를 점령한 후의 역사들이다.
박물관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여러 점의 초상화를 볼 수 있는데, 이 초상화들은 스페인의 역대 왕의 초상화이다.
스 페인을 최초로 통합하고 번영케한 이자벨라 카톨리카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 그리고 그들의 딸이자 광녀의 오명을 쓰기도 했던 후안나 라로카(La Loca 란 광녀 라는 뜻이다), 후안나를 질투의 광기로 몰아넣었던 펠리페 엘 에르모소(El Hermoso 란 멋있는 사람? 미남? 뭐 그런 뜻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주였나? 아무튼, 알함브라의 카를로스5세 궁전을 지은 주인공 카를로스 5세까지.
그 외에도 여러 왕과 여왕들이 초상화로 남겨져 있다.
나는 특히나 영화로도 만들어진 후안나 라로카와 펠리페 엘 에르모소의 이야기에 흥미가 많아서, 그들의 초상화를 찾아 보았는데,
펠리페 엘 에르모소가 생각했던 것 만큼 미남이 아니어서 다소 실망을 했었다. ㅋㅋㅋ
반면 후안나 라로카의 초상화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서 우울함이 느껴졌다.
후안나 라로카 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후안나 라로카의 모습과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새삼 과거의 현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라는 이름으로 각색되며, 얼마나 많이 변해오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벽을 장식한 왕들은 모두 그라나다를 사랑한 왕 들이다.
벽 뿐만이 아니다. 박물관의 어느 방에 들어가면, 천장에 가득히 왕의 얼굴들과 왕의 이름들이 조각되어져 있다.
그곳에는 카톨릭 왕 뿐만 아니라 무슬림 왕도 기록되어져 있고, 그라나다를 거쳐간 많은 왕과 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얼굴이 조각되어져 있다.
왕가에 대한 자료 뿐 아니라, 그라나다의 다양한 문화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져 있는데,
6월마다 용을 테마로 해서 열리는 그라나다의 축제 코르푸스 크리스티의 용도 전시가 되어 있고,
워싱턴 어빙의 작업실도 전시가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그라나다의 집시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이었다.
그라나다에서 집시라는 존재는, 이미 이질적인 존재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오랜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알함브라가 워싱턴 어빙에 의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그곳에 살던 사람들 또한 집시였고,
알바이신에 카르멘 개조등의 재건축으로 일반인들이 들어와 다시 살기 전까지 그곳에 살던 사람들 또한 집시였다.
아직도 그들이 살고 있는 사크로몬테와 그곳의 동굴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집시들의 마을로 불리고 있으며, 사크로몬테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한때 집시들의 왕자라고 불리던 사나이, Chorrojumo 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한 집시들을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해 놓은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름모를 집시 가족의 사진들과 어느 집시 여인의 사진...
지금보다는 더 거칠고 더 자유로웠던 그들의 영혼이, 사진을 통해서 고스란히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내가 인상깊게 보았던 것은 La Ladrona 라는 그림인데,
어느 집시 여인이 목과 손발이 벽에 묶인 채, 눈 앞에 사슬에 묶여있는 금붙이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당시 도둑질을 일삼던 집시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들었는데,
한마디로 도둑질을 하면 잡혀간다, 내지는 죽는다, 뭐 그런 뜻이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그 묶여있는 집시의 눈빛과 모양새가 너무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좌로부터
1. La Ladrona (Antonio Fabrés y Costa (1854-1938)
2. Gitana (José García Ayola (1836-1900))
3. Chorroejumo (José García Ayola (1836-1900))
출처 : Museo de Casa de los Tiros 홈페이지
좌로부터
1. Cuadrada Dorada
2. Cartel de las fiestas del Corpus de 1921 (José Carazo Martínez)
3. Retrato de Isabel la Católica (Anónimo)
출처 : Museo de Casa de los Tiros 홈페이지
숨겨진 야경이 있는 그곳, Bar Autentico
레알레호에 있는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나만의 장소.
뭐 사실 나만의 장소는 아니지. 엄연한 영업소이고 사람들도 꽤 많이 온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다 로컬, 현지 사람들이다.
레알레호의 끝에서 그라나다 묘지 방향으로 한참을 가면
길의 끝의 또 끝에 다다라 Bar Autentico 라는, 얼핏 보면 지나치기 쉬운 간판을 하나 볼 수 있다.
이 곳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시간이 꽤 걸리는데,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그래도 나는 걷는게 더 좋다.
이곳은 레알레호에서도 옛 주택이 남아있는 지구로, 특히 밤에 걸으면 새하얀 벽과 집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동굴집들도 있고,
벽에 커다랗게 성모 마리아를 장식해 놓은 것도 있으며,
무엇보다... 걷다 보면 나타나는 헤닐강 쪽의 야경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아름답다는 거.
* 위 사진 : Bar Autentico 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야경.
이 구역의 야경은 알함브라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 말 아름답다.
특히 이 Bar Autentico 에 가서, 여름에만 오픈되는 야외 테라자 제일 아래층에 앉으면,
눈앞에 수많은 불빛이 마치 거대한 바다의 꿈틀거리는 파도처럼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타파가 없는, 칵테일 위주의 바 라도, 너무 좋아하는 바 중의 하나다.
바의 근처 길 건너에는 밤에 가면 특히나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로 바글바글 거린다. -_-;
개인적으로 이곳을 또 하나의 미라도르로 이름붙여 보자면, Mirador de los amantes Romanticos. ;)
로맨틱한 연인들의 미라도르! 헤헴! ^^
그라나다가 사랑하는, 그라나다를 사랑하는 아티스트, Niño de las Pinturas
마지막으로, 레알레호... 하면 그라나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 중의 하나.
그라나다의 거리화가 Niño de las Pinturas 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그림은 그라나다에서 레알레호 외에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지만,
특히나 그가 살고있는 이곳 레알레호에서는 그의 그림을 여기 저기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주택은 통채로 그의 그림으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려고 레알레호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그림은 특유의 화풍과 메시지를 담은 짧은 문구가 특징인데,
메시지를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로 자본주의의 폐해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은 레알레호가 아닌 알바이신의 우리 집 뒷쪽에도 있는데,
길다란 지그재그 식 계단에 벽화 형식으로 그려진 멋진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그라나다는 워낙 도시 자체가 값어치 있는 문화재이기 때문에,
주정부 측에서는 그와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다고 들었다. ^^;
그래도 나는 그라나다 거리의 이곳 저곳에서 허물없이 볼 수 있는 그의 멋진 그림이 좋고,
레알레호에 가면 종종 그의 그림을 찾아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기도 한다!
장점이 있다면, 멋진 그림을 돈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과, 미술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단점이 있다면, 그의 그림들이 워낙 멋져서 왠만한 그래피티는 형편없어 보인다는 점? ^^
그라나다 대학에 다니는 내 친구는 이웃집에 그가 살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너무너무 흥분해서 그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내 친구가 하는 말.
"Es un poco loco." (걔는 좀 미쳤어.)
푸하하하하...
그 얼마나 Niño de Pintura 다운 캐릭터 인지. ㅋㅋㅋㅋㅋ
암튼, 이렇게 햇살 좋은 날 걷기 좋은 그라나다의 레알레호.
아직도 숨겨진 보물들이 가득가득한 나의 보물지도.
그 햇살의 따스함과 시에라 네바다의 순백의 아름다움, Niño de las pinturas 의 키치함도 함께 맘 속에 담아본다. ^^
Los Momentos de Realejo y de las Obras del Niño de las Pinturas
출처를 밝힌 것들을 제외한 내용물의 모든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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