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그라나다의 세마나 산타, 부활절 주간이 끝나간다.
이곳 그라나다에는 부활절 주간 내내 매일 4~5개의 웅장한 행렬이 있지만, 그걸 모두 볼 수는 없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처
음 그 행렬을 보았을 때도, 지금도, 그런 종교적인 행렬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아름다운 다른 나라의 문화
정도일 뿐이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나치게 종교적인 행사가 많은 이곳의 이런 문화(예를들어,
세마나 산타, 크루즈 데 마요 같은..)를 꺼려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인종 뿐만 아니라 종교와 문화 또한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어버린 유럽에서 지나치게 종교적인 이런 행사는 어떤 의미로는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권에 대해 위압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고, 부활절 주간의 행렬에서 꼭 등장하는 색색깔의 고깔모자가 마치 인종차별단체였던 KKK 단의
꼬깔모자를 연상시켜서 보기에 거북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의외로 이
행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반면에 나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와서 그런지 오히려 그런 반감 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더 크고, 그냥 그라나다에서 볼 수 있는, 혹은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 중의 하나?
정도로 인식이 될 뿐이다.
하지만, 물론 오랫동안 카톨릭이 뿌리내리고, 그로 인해 역사 속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유럽이라면 그에 대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 밤, Procesión de los gitanos(집시들의 행렬) 이 행진할 예정이었던 사크로몬테 >
그라나다의 부활절 주간에 이루어지는 행렬 중에 가장 유명한 행렬은 집시들의 행렬과 침묵의 행렬이다.
집
시들의 행렬은 행렬이 지나가는 코스가 집시들이 살고있는 사크로몬테를 지나 새벽 4시경에 사크로몬테의 끝에 있는 사크로몬테 수도원에
도착하기 때문에 집시들의 행렬이라고 불리는데, 특히나 행렬이 사크로몬테를 지나갈 때 사크로몬테의 집시들이 나와서 춤과 노래를
추며 행렬을 축복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아름답다고 하여 유명한 행렬이다. 이 행렬은 올해는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밤에 비가 소나기성으로 내리다 말다 해서 보러 가지는 못했고, 아마 비가 많이 와서 행진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침묵의 행렬은 행렬이 거리를 지나갈 때, 거리의 모든 가로등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오로지
행렬의 촛불들만이 빛을 밝히며, 모두들 침묵해야하는 가운데 행렬의 제일 앞에서 울리는 북 소리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행렬이라, 침묵의 행렬 이라고 불리운다. 이 행렬은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행렬이 다로강변을
지나가는 시간이 새벽 3시쯤이라, 너무 늦은 시각이라 보러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친구와 고민을 하고 있었다.
< 목요일 밤, 알바이신을 행진하는 Procesion de Estrella (Cofradía de Nazarenos de Nuestro Padre Jesús de la Pasión y María Santísima de la Estrella)>
목요일은 또한, 알바이신에서 세 개의 행렬이 행진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로라, 콘차, 에스트레야.
새벽1시에 알바이신의 플라자 라르가를 지나는 에스트레야 행렬을 놓치지 말라는 조언을 체크해 놓고, 집에서 가까운 플라자 라르가로 새벽에 가보자고 친구와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
런데 밤 11시 쯤, 집 밖에서 희미한 음악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 옆길을 따라 행렬이 플라자
라르가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바로 집 앞을 지나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친구를 불러 같이 보러
나갔다!
행렬은 알바이신의 세개의 행렬 중 하나인 에스트레야 행렬 이었다.
플라자 라르가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평소에는 닫혀있던 창문들도 모두 열려 지나가는 행렬을 구경하고 축복하고 있었다!
아아… 나는 정말이지 알바이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행렬이 알바이신을 천천히 지나가는 그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평소에 그냥 집이 예쁘다고만 생각하던 집들 모두 가족들이 발코니로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아, 저런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반가웠다!
예
상치 못하게 1년을 넘게 살게 된 알바이신, 좌절도 있었고, 결코 이곳에서의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순간, 마치 알바이신이
나를 품에 꼭 안아주면서, 나를 알바이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하나, 소속감? 동질감?
유대감? 하여튼, 머나먼 타지에서 쉽게 느껴볼 수 없는 가슴 뜨거운 기분 이었다.
<부활절 주간,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좁은 골목을 지나는 에스트레야 행렬과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알바이신의 사람들>
알
바이신의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그렇기 때문에 행렬은 이 길들을 가로등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지나가기가 아주 힘들었다.
행렬, 특히 조각상을 매고 가는 사람들은 커튼의 안쪽에 들어가서 짊어매고 걸어가는지라, 앞을 볼 수가 없고, 그 앞에서 카파타즈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들에게 방향을 안내한다. 오른쪽, 오른쪽! 아니아니 그만! 왼쪽으로 한발자국! 이러면서…
그렇게 요리조리 그 좁은 알바이신의 길을 그 커다란 크리스토상과 마리아상을 짊어지고 가는 모습 또한 곡예에 가까울 정도였다.
마리아 상이 지나갈 때마다, "비바! 비바! 구아빠!(구아빠, 스페인어로 미녀라는 뜻이다.) 구아빠!" 라는 찬양의 소리가 알바이신 방방곡곡으로 울려퍼졌다!
우
리는 그 행렬의 중간에 껴서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추며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가는 그들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크리스토상을 바라보면서
앞에 선 악대의 힘찬 드럼 연주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걷다 보니, 어느 새 새벽 2시 반이 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다로강변으로 내려가서 '침묵의 행렬'도 보자! 라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알바이신을 내려와 다로강변으로 왔다.
아직 행렬이 지나가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새벽 2시반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다로강변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행렬이 언제 지나가는지 물어보니 20분 정도 후에 지나간다고 하길래, 우리는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 보자고 하고, 플라자 누에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라나다, 부활절 주간 이루어지는 수많은 행렬 중, 가장 유명한 행렬 가운데 하나인 침묵의 행렬. 침묵과 어둠 속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11시부터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그때 마침 비어있는 벤치가 보여 그곳에 앉기 위해 걸어가고 있던 그 순간!!!!!!!!
플라자 라르가를 환하게 밝히던 가로등이 순식간에 전부 꺼지고, 광장이 컴컴한 어둠에 뒤덮였다!
웅성웅성 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어둠과 침묵이 광장에 가득한 가운데, 저 멀리서 희미하게 북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 보니, 마찬가지로 불이 모두 꺼진 그랑비아를 지나, 이쪽으로 '침묵의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마법과 같은 신기한 순간이었다.
적
지 않은 사람들이 행렬을 보기 위해 마찬가지로 긴 행렬을 이루어 서 있었지만, 거리는 거짓말처럼 고요했고, 가로등이 모두 꺼진
거리를 촛불 하나를 들고 행진하는 행렬의 고깔모자 색은 마침 검은색이라, 그 촛불만이 불을 밝힌 가운데 지나가는 침묵의 행렬의
모습은 그야말로 엄숙했다.
꼭 그런 엄숙하고 고요한 자리에서는 훼방을 놓지 못해 안달이 난 젊은이들이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서 침묵을 지키며 행렬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뒤를 마구 뛰어가며 거하게 트름을 하는 사람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려온 그들의 영어로 이루어진 대화를 들으며, 저런것이 바로 민폐, 나라망신이구나 싶었다.
여튼, 앞서 알바이신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에스트레야 행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였다.
이
행렬에는 마리아상이 없고, 크리스토 상만 있었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도 없고, 대신 촛불을 든 고깔모자를 쓴 자들의 행렬이
다른 행렬보다 훨씬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로강변으로 다시 올라가, 여전히 불을 밝힌 알함브라 궁 아래로, 침묵 속에 물 흐르는
소리가 더욱 힘차게 들리는 다로강 위로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모두가 고요하고,
다로강이 흐르는 소리만이 거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어디선가 쇠사슬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보니, 행렬의
뒷편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키가 작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검은 고깔모자를 얼굴과 모자에 뒤집어 쓴 채, 자기 키보다 큰 커다란
검은 십자가를 어깨에 매고, 양 발목에 쇠사슬을 길게 묶고 맨발로 행렬을 따라오고 있다. 물론 모두가 맨발은 아니었고, 양말을
신은 아이도 있고, 쪼리를 신은 아이도 있었는데, 개중에는 정말 맨발로 걸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행렬은 Paseo de los tristes 의 중간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가며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행렬이 성당에 들어간 후, 우리가 플라자 누에바를 향해 걸어나가는 순간, 꺼져있던 거리의 모든 가로등들이 일시에 켜졌다.
침묵의 행렬을 보았던 얼마 안되는 그 시간은 정말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어
디선가 어두운 공간에서 촛불 하나만 켜놓고 있으면 최면의 효과가 있다던가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두운 밤길, 불이 모두 꺼지고 모든 인위적인 소리들이 잦아든 고요한 길 위를 촛불을 들고 천천히
지나가던 침묵의 행렬의 모습은, 비록 종교적 공감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간절하게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 염원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종교, 이 유럽은 특히나
종교 때문에 많은 피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는 더더욱이나 민감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다른 유럽에서 오 친구들의 부활절 주간 행사에 대한 반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스페인의 부활절 주간 행사는 아마 먼 훗날에는
점점 더 약식화되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달걀 하나를 나눠먹는 것으로 바뀌어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 행렬에
참여하는 이곳 사람들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고, 그들과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행렬은
너무나 아름다워 먼 곳에서 온 타 문화권의 나와 같은 여행자들의 눈과 귀, 그리고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문득, 행렬의 마리아상을 짊어지고 가던 청년들이 입고 있던 옷의 뒤에 써 있던 문구,
30 años siendo tus pies...(30년 동안 당신의 발이 되었습니다) 가 기억을 스친다.
각 행렬마다 역사가 다르고, 이 옷을 입고 있던 청년의 행렬은 30년이 되었다는 의미일 텐데, 왠지 그 짧은 문구 속에 이들이 지켜왔고 또 지켜가는 것에 대한 크나큰 자부심이 전해져 왔다.
본 의아니게 KKK 단을 연상시키는 고깔모자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를지라도, 이것 또한 그들이 지켜온 문화이고, 그 속에 녹아있는 그들만의 삶의 또 다른 모습이 그 행렬을 통해 어느 정도 이방인인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부 활절 기간 동안 거리 내내 희미하게 남아있던 행렬의 아로마 향도, 오늘 창밖에 엄청나게 퍼붓는 비가 지나고 부활절이 끝나고 나면 더이상 남아있지 않겠지만, 프랑코 독재라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진지하게 종교 행사에 참여하던 그들의 눈빛과 알바이신을 환하게 밝히던 우리들의 구아빠, 마리아와 크리스토의 수많은 촛불들은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그라나다, 스페인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Los Momentos del Procesión de Estrella del Albaicí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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