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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나를 흐르는 시간

Granada days/People

by priim 2013. 4. 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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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상징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투우와 정열의 나라, 플라멩코와 시에스타의 나라, 축제의 나라, 혹은 페넬로페 크루즈.

사실 그 상징이라는 것이 의외로 그 외의 많은 것들을 가려버리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몇달동안 살아본 결과, 스페인을 상징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과연 그럴만하다고 느낀다.

투 우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오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아직은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고, 투우장과 투우사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대표인물로 빠지지 않으며, 텔레비젼에서는 유명한 투우사의 일거수 일투족이 보도되곤 한다. 내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지내기 때문인지, 플라멩고 또한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미 많이 상업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뭐 그리 나쁘지 않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플라멩코 춤과 음악을 배우려고 하고 있으며, 그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플라멩코 공연을 통해 오랫동안 전해져오는 그들의 깊숙한 감성과 조우한다. 시에스타는 생각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단, 시에스타 시간에 가게 문을 닫는 것 만큼은 칼같다. 하지만 문을 닫고 그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도 같다. 40도를 훌쩍 웃돈다는 여름이 되면 달라질까. 수많은 축제들은 스페인을 상징하는 많은 것들 중 단연 대표적이라고 할 만하다. 정말 이곳에는 다양하고 많은 축제가 있고, 또 그 축제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그만큼 축제를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축제는 어쩌다 깔아놓은 멍석이 아니라, 일상이고 생활이다. 1년 내내 성실히 축제를 준비하고, 축제가 되면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선보이는가 하면, 축제 중에 만나는 낯선 그 누구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방인에 대한 약간의 경계심 또한 훌훌 날려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마음을 모두 열고 다가가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그건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을 놓고 판단하자면 분명 이곳 사람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낯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한 스위스 친구는 이곳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플라멩고 춤을 배우고 기타도 배운다. 이곳에는 이런 친구들이 꽤 많다. 유럽 각국에서 휴가 겸 스페인어를 배울 겸 해서 몇주 머물다 가는 친구들이 많이 오는데, 안달루시아 지방인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정통 플라멩코 춤과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알바이신을 걷다 보면 서툰 플라멩고 기타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어느 좁은 방 창가에서 누군가 열심히 플라멩코 기타를 연습하고 있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기면 곳곳에 카페와 바가 있다. 광장에 면해있는 곳은 언제나 사람이 많지만 골목을 돌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곳들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깊은 맛의 카페콘레체를 맛볼 수 있는 보물같은 곳들이다. 물론 사람이 많은 곳도, 사람이 많지 않은 곳도 나는 좋다. 왜 이곳에서의 일상은 언제나 즐거운 것인가에 대해 언젠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은 지금 스페인 경제가 그렇게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거나, 범죄율이 급상승한다거나, 자살율이 증가한다거나 하는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날씨 때문이라는 것. 무서울 정도로 뜨겁게 내리쬐는 안달루시아의 태양은 그 어느 다른 곳의 태양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뜨겁지만 뜨거운 만큼 아름답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옆에 파아란 안달루시아의 하늘은, 이곳의 공기에는 특별한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 하늘 아래 그 태양빛을 받은 모든 것들은 원래 그것이 지니고 있는 모습 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생기있게 보인다. 선명한 색의 대비는 눈을 즐겁게 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다. 아주 본능적인 것이지만, 이런 작은 차이가 이곳 사람들의 느긋한 성격을 만든 것이 아닐까.


느긋한 성격. 또는 낙천적인 성격. 따뜻한 나라, 날씨가 맑은 나라에 사는 것이 좋은 이유는 이것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장마철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왜 사람들이 맑은 날을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의 문제를 떠나, 그 맑은 날씨가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난 그래서 나중에 꼭 바닷가에 살고 싶다. 파아란 하늘과 뜨거운 태양과 드넓은 바다가 있는 곳에서 즐거운 것들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싶다.


밤에 알바이신을 걷다 보면 저녁 9시 10시쯤 불이 켜진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곳의 불들은 거의 대부분 아주 밝지는 않은, 살짝 주황빛이 도는 불빛이다. 몇백년은 족히 된 알바이신의 오래된 집 안에 켜진 불빛과 그 안에서 풍겨나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리하는 사람의 모습은 왠지 모를 감동을 준다.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몇백년 된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안에서. 아주 오래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진 집, 수많은 요리들이 만들어졌을 주방에서 오늘도 오늘 먹을 음식 하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음식을 몇명의 친구들과 함께 느긋하게 불빛아래 둘러앉아, 수다에 수다를 이어가면서 천천히 먹는 그 시간 속의 행복. 이곳에 살다 보면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초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느샌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높은 곳에 살까. 30층 40층. 그렇게 높은 곳에 살면 뭐가 좋지. 이렇게 땅에서 가까운 곳에 살아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있는데. 아마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과 나의 삶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언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어느 사인가 내 삶을 흐르는 시간이 그렇게 바뀌었다. 이것이 인간 생활의 필수요소라는 의.식.주. 가운데 주거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이랄까.


어떤 누군가의 노랫소리 하나로도 인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더이상 아름다워질 필요 조차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이곳이 더없이 좋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지만, 어쨌든 그것을 제하고 생각하자면, 이곳에서의 삶이 나는 참 좋다.

이 좋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무언가 마냥 좋다고 느끼는 이 감정이 모든 것의 근원이자 목표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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