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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모로코 상인, 하밋 아저씨

Granada days/People

by priim 2013. 4. 1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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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esta de chino 인가? 암튼, 다로강변에서 알함브라로 올라가는 조용한 길에서 바라본 5월 해질녘의 알바이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그런 시간을 지나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절대로 어깨를 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그 시간을 잘 견뎌내는지.

어떻게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지가 인생에서는 정작 그 구렁텅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다지 긴 인생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도 몇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터닝 포인트가 긍정적인 것,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 나쁜 것일 때도 물론 있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의 자세가 그때부터의 그 사람의 인생을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나름대로 잘 견뎌왔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그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고 한다.

온실 속의 화초보다 비바람에 맞서 싸운 들풀이 더 강인하듯,

인생은 그것을 견뎌내는 자에게 더 빛나는 법이다.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큰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곳 그라나다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인 모로코 상인 하밋 아저씨와 관련된 작은 일화 하나를 들려주고 싶다.


처음 그라나다에 왔을 때, 내 숙소는 내가 다닐 어학원 위층에 위치한 숙소, 여기 말로 피소(piso) 였다.

학원 피소는 그야말로 천국 이었다.

겨울, 그라나다에서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난방이다.

학원 숙소는, 언제나 따뜻하고, 따뜻한 물을 원없이 쓸 수 있고, 심지어는 덥기까지 한, 그야말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숙소였다.

하지만 물론, 가격이 비쌌다.


1월부터 7월까지 그라나다에 있어야 할 나로써는 비싼 학원 피소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는 없었다.

1달이 다 되어갈 무렵, 새로운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숙소를 찾는 조건은 일단, 학원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함께 숙소를 사용할 친구들, 소위 콤파녜라들이 마음에 드는 곳.

난방이 잘 되고, 물이 잘 나오는 곳.

비싸지 않은 곳.


이 정도가 되겠다.


그라나다는 대학생들, 특히 유럽 각지에서 몰려드는 에라스무스 교환학생들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라고,

도시 곳곳에 피소를 함께 쓸 친구들을 찾고 있다거나, 피소를 임대한다는 전단지가 많이 붙어있다.


아직 말도 입에 안 붙어서 현지인과 말할 자신도 없던 나는,

일단 물어봐야 할 질문 목록을 노트에 적어놓고,

거리의 전단지들 중 마음에 드는 가격과 위치에 있는 전단지의 전화번호들을 쭈욱 적어와서 일일이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정말 운이 좋게도, 세번째 방문한 피소가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 피소는 스페인 학생2명과 이탈리아 학생1명이 살고 있는 피소로,

저녁 해질 무렵이 되면 온 세상의 새들이 다 모여든다는 플라자 트리니다드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고로 학원에서도 엄청 가깝고, 가격도 기적적으로 싸고, 피소도 완전 깨끗한!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피소의 소유주가 그라나다에 있지 않아서 며칠 뒤에야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일단은 돌아왔다.


그리고는 피소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된 며칠이 지나고 계약을 하기로 한 그 날!

약속시간으로부터 정확히 15분 전에 메시지가 왔다.

피소의 소유주가 피소를 임대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거다. -_-

메시지를 보낸 친구는 이탈리아 학생이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피소의 주인이 임대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며,

그 피소의 주인이 이상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말 밖에 하질 않았다.


서면을 통해 계약된 내용도 없고 구두계약만 했을 뿐이니, 뭐 어찌해볼 수도 없었다.


이제 학원 피소에서 지낼 수 있는 날은 3~4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당장 며칠은 호스텔에서 묶겠지만, 또 피소를 구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약속장소로 가던 도중에 메시지를 받은 터라, 다시 발걸음을 내 숙소로 옮겼다.

돌아가는 길에 평소 '올라~!' 하며 반갑게 인사하던 하밋 아저씨를 만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올라~' 를 외쳤는데, 울컥하고 감정이 복받쳐 하밋 아저씨에게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모두 털어놓고 싶어졌다.

꼭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를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는 어린 아이 처럼.

그래서 서툰 스페인어 뚝딱거리며(신기하게도 말이 술술 잘 나왔다;;) 하소연을 하는데,

왜 그랬는지,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오기 시작했다.


오며가며 인사만 하던 애가 다짜고짜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울어버리니까 아저씨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밋 아저씨는 울고있는 나에게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걱정마, 잘 될 꺼야. 여기에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새로운 전단지가 붙어. 다시 구하면 되니까 울지마. 나도 도와줄게.'

라고 아저씨 특유의 자상한 목소리로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고는 정말 다음날 아침부터 내가 지나갈 때마다 어디에 전단지가 많이 붙어있는지,

매번 새로운 장소를 가르쳐 주시면서, 혹 아저씨네 가게 근처에도 전단지가 붙으면,

'이 전단지 붙인 여학생들이 이탈리아 학생들인데 아주 친절하더라. 여기 한번 가봐.'

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주셨다.


그렇게 하밋아저씨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지금의 숙소를 구하게 되었고,

너무 마음에 드는 지금의 콤파녜라들도 만나게 되었다.


가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내려온다고 한다.

그때의 하밋 아저씨가 나에겐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적절한 그 시기에 필요로하는 적절한 도움을 기꺼이 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못난 피해의식에 나만 아는 이기주의가 그 정도의 정신적 여유도 허락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난, 그때의 하밋 아저씨를 만났기 때문에.

또 그런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아마 그때는, 내가 겪어낸 온갖 자잘한 고난들 마저도 감사하게 여길 수 있겠지.




- 잠이 잘 오지 않는 새벽, 그라나다에서





< 다로강 변에 피어있던 예쁜 양귀비, 머리가 하얀 스페인할머니에게 이 꽃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봤더니, amapola 라고 했던가? 이 꽃을 보고 있으면 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한다며, 가볍게 노래까지 한 소절 불러주시던..ㅎㅎㅎ>



*폰카라 화질이 별로지만 그래도 컨텐츠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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