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 친구 다니엘

Granada days/People

by priim 2013. 4. 10. 12:54

본문




<우리가 함께 보떼욘을 했던 산 헤로니모 수도원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독일에서 온 그 친구의 이름은 다니엘 이었다.

모로코 여행을 다녀오고 2주의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어학원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에라스무스 학생들이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려서,

몇달동안 익숙했던 그라나다 전체가, 갑자기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되어 버렸었다.

조금 낯설고 힘들었던 그때, 친해진 친구가 다니엘 이었다.

나이가 동갑이고, 이야기도 잘 통하는 편이라 거의 매일 함께 다녔다.

함께 다니던 친구들도 둘다 비슷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사크로몬테의 영화를 볼 때는 늘 다니엘이 함께 있었다.

그 친구도 영화를 좋아하고, 나도 영화를 좋아해서,

매번 볼 때 마다 함께보는 다른 친구들은 달랐지만,

언제나 플라자 누에보 분수 앞에서 만나서 함께 영화를 보러 갔었다.

Joder 와 De puta madre 라는 표현을 참 좋아하던 다니엘은,

사크로몬테에 오를 때마다 연신 de puta madre 를 외치며 마음에 들어 했었다.

사크로몬테의 Cueva de la Rocio 는 유명한 타블라오 플라멩고 이지만,

우리는 그 위층의 테라자에서 맥주 한잔씩 하며 알함브라와 사크로몬테를 보는 걸 더 좋아했다.

10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8시 반에 만나서 1시간 가량 이야기를 하면서 타파를 먹었다.

어느 날은 Rocio 에서, 어느 날은 Paseo de triste 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틴토 데 베라노 한잔, 좋은 친구, 아름다운 풍경, 그 위에 아름다운 음악소리...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 앞의 알함브라가 멋지게 보이는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한 번은 일요일인가, 유성우가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유성우를 보러 가자고 사크로 몬테로 갔었다.

그러나 우리가 간 Rocio 의 테라자는 불빛이 너무 밝아서 많은 유성우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유성우 따위는 그냥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사크로몬테 말고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본 영화는 프로메테우스.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그냥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다니엘, 로빈과 함께 우리 셋은 intercambio 라는 언어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바에 종종 갔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라나다의 여러 아름다운 곳들을 함께 다녔다.

현지인이 아니고서는 알지 못할 것 같은 Bar Autentico 에서는 그 아름다운 야경에 할말을 잃었었다..

함께 갔던 수요일의 Maewest 에서는 80년대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음악을 함께 들었었다.


과학공원도 함께 갔었다.

그곳에 있던 아인슈타인 동상을 보고 내 남자친구라면서 실없는 농담을 했었다.

인체의 신비관에서 뇌파를 이용해 공놀이를 하는 곳이 있었는데, 두 번 다 다니엘이 이겼었다.

플라네타리움에서 세포에 관한 영상을 봤는데,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나중에 둘 다 졸았던 기억이 난다.


7월의 어느 주말에는 함께 살로브레냐 해변으로 놀러를 갔었다.

해파리가 기승이라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와서 해변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해변의 바에서 맥주 한잔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던 그 이야기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 친구들과 함께 였기에 더 행복했다는 기억은 또렷하게 마음속에 남아있다.

돌아오는 버스와 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 다니엘과 많은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대화가 참 잘 통하는 친구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타파를 먹으러 다닌 우리는 늘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다니엘의 집 근처 주택가의 바들이 참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바 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고, 함께 하면 더욱 즐거웠던 친구가 있었기에 참 좋았다.

막다른 골목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좁은 하늘로 보이는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은 참 즐거웠다.


학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늘 함께 학원 근처 바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주로 마시던 커피는 카페 콘 레체, 혹은 카페 콘 옐로, 카페 코르타도.

주로 나누던 이야기는 오늘 뭐할까. 오늘은 어디갈까.

지난번에 본 영화 좋았지. 등등..


어제 그저께는 그라나다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 집에서 파티를 했다.

파티의 주제는 세계의 음식. 각자 자기나라 음식을 가져와서 하는 파티였는데,

나는 고추장삼겹살, 김밥, 파전 그리고 오이와 당근을 고추장에 찍어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다른 친구들도 모로코, 페루, 스페인, 일본 등의 각국의 음식을 가져와서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새벽 2시까지 파티를 계속했고, 그 후에는 밖으로 나가 바에 가서 한잔 하고,

산 헤로니모 수도원 옆 오렌지 나무들 아래에서 환타와 론으로 보떼욘(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 이곳에서는 금지되어 있다;)도 하고,

근처 디스코텍에 가서 락음악에 맞춰 우리 나름대로의 '춤'도 췄다.

그렇게 새벽까지 함께했던 그 파티는 나의 감사파티이기도 했지만,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다니엘의 고별파티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페드로 안토니오거리의 '페로 안달루스'에 갔었는데,

그곳은 타파가 없는 아이리쉬 펍 이었다.

1유로에 많은 양의 맥주를 먹을 수 있었는데,

다음 날 다니엘도 나도 속이 쓰려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딱 한잔 마셨는데도, 역시 헤비하게 술을 마시는 건 좋지 않다.


생각해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


오늘은 그 친구와 함께하는 그라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사크로몬테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마침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샤의 축구경기가 있어서, 바에서 그걸 봤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을 바르샤와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면서 보내는 건, 멋진 계획인 것 같다는 다니엘의 의견에 따라.

오늘의 경기는 바르샤가 3:2로 이겼고, 1시간 반 남짓의 경기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 보다 괜찮았던 마지막 밤이었던 것 같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으니까.

내일 하루를 숙취로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다니엘의 말에 따라 12시가 넘어 우리는 헤어졌다.

마지막 인사로 큰 포옹을 하며 기약없는 다음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다음이란 건 기약하기 힘들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도 기약할 수 있다면 이 친구와는 평생지기로 지내고 싶은 건, 내 욕심일까.


7,8월은 나에게 조금은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들에 지치지 않고, 오히려 그라나다에서 보냈던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했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마음이 참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Joder와 de puta madre 를 참 좋아하고,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한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던,

아이러니한 농담을 즐겨하고, 더운 걸 참 싫어하고, 내가 뭐든 좋아한다고만 말하면 무조건 싫어한다고 장난치고,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늘 큰 배낭을 매고 다니고, 양볼에 뽀뽀를 하는 스페인식 인사를 할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우리는 스페인에 있으니까~' 하며

살짝 어색한 모습을 보였던, 옥토버페스트에 대해 묻는 걸 지겨워 했던,

나와 2012년 여름을 함께했던 독일에서 온 Guirri 다니엘.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렇게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함께할 수 있도록

나에게 선물을 준 나의 삶에, 진심으로 Muchas Gracias!


그리고 이 시간들이 언젠가 그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돌이켜 문득 문득 떠올리면 그때 참 행복했지 하고 마음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안녕.

나의 2012년 여름.


그리고 한 여름밤의 꿈 같았던

많이 보고싶을 나의 친구 다니엘.




<소중한 친구를 하나를 얻고, 그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기쁨은 그 친구와의 이별의 아쉬움만큼이나 소중하다.>




<사크로몬테 동굴 박물관 화장실 앞 벤치에서 보았던 야경, 멀리 보이는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 언젠가 헤네랄리페를 못 알아본 다니엘이, 나중에 저 하얀집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ㅋㅋㅋ>


<즐겨갔던 사크로몬테의 바, rocio, 생선을 주로 하는 타파가 맛있었지.. 다니엘의 카사블랑카를 보았던 곳도 이곳이었지? ㅎㅎ>


<Bar Autentico 에서의 환상적인 야경, 폰카로 모두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에 여러 장을 찍었다..>




<Bar Autentico의 야경,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다. 벌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Bar Autentico, 모니카, 체마 그리고 다니엘과 함께>


<Bar Autentico 의 야경..>



<Bar Autentico의 우리가 앉았던 테라자 위에 달려있던 청포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Granada days > Peop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그들, 바바라  (0) 2013.04.10
하밋 아저씨와의 대화  (0) 2013.04.10
지금, 여기, 나를 흐르는 시간  (0) 2013.04.10
마음이 따뜻한 모로코 상인, 하밋 아저씨  (0) 2013.04.10
100%의 믿음  (0) 2013.04.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