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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길치, 유럽가다!] #9. 고호의 마을, 오베르 쉬와즈..

02'길치 유럽가다

by priim 2013. 4. 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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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뷔제를 버리고, 반 고호에게로..-_-;

     [오베르 쉬와즈의 고양이, 천계영님을 따라 나도 찍어봐따~^^;;]


날씨는 왠지 우중충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
아무튼 오늘은 고호의 마을에 가는 날이다.

아침에 선덕, 현덕 자매가 근처의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아에 간다고해서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의 자아가 조금 흔들렸으나. ㅡㅡ;;
내가 예전부터 보고싶어했던 고호의 마을 이기에..
과감히 빌라 사보아를 포기하고 오는 길이다.

고호의 마을에 가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건..
역시 만화가 천계영씨의 유럽여행 사진을 보다가
'고호의 마을에 사는 고양이' 라는 사진을 보고 나서 였다.
고호의 마을.. 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곳인데도..
사진 속의 그곳은 아주 소박하고 조용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고,

게다가..
반 고호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겹쳐서 생각하니까..
더없이 매력적인 곳으로 그때 나에겐 다가왔었다.

먼저 오페라 역에 가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점에 가서 TC 를 현금으로 바꾸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뒤에 미국인 할머니 두 분이 줄을 서 계셔서 대화 하는걸 들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가지고 있던 핸드백을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음.. 생각해보니, 파리의 소매치기들에게
부유해 보이는 미국의, 그것도 늙은 할머니의 핸드백은
불보듯 뻔한 먹이감을 비칠 것 같기는 했다.
아무튼 그 할머니가 만원 지하철에 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가 자기 가방을 막 잡아 당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손이 힘이 너무 세서 가방을 빼앗기고
범인은 못 잡았다는 거다.
-_-;;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섬찟해서, 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ㅡ0ㅡ;


역시 길치, 또 길을 잃을 뻔 하다...ㅜ..ㅠ;

아무튼 TC 를 현금으로 바꾸고 생 라자르 역에 가서
고호의 마을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ㅠㅠ

고호의 마을에 가려면 Pontoize 라는 역을 가서 오
베르 쉬와즈 행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파리에서 pontoize 가는 열차에서
내가 모르고 그 역을 지나쳐 버린 것이다.ㅠㅠ;;

그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는데
두 명의 프랑스 총각들이 나를 도와줬다.
그런데, 도와주려고는 했는데.ㅠㅠ;; 말이 잘 안 통하는 거다..

어디로 가냐고 해서
고호의 마을에 가기 위해 퐁뚜와즈에 간다고 하니까..
알아 듣지를 못하는 거다.
그래서 귀 한쪽을 자른 화가 (손짓으로) 반 고호의 마을에 가려고
퐁뚜와즈에 간다고 하니까,
그제사 알아듣고 일단 여기서 내려서 어찌 어찌 해야 한다고
정말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모두 불어로 말을 해서..ㅠㅠ;;;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말만 알아듣고
일단은 고맙다고 말한 다음에 다음 역에서 내려버렸다.

보통.. 사람들에게 고호 라고 하면 잘 못 알아 듣는다.
'반고' 라고 해야지 알아듣는 거 같았다.

암튼.. 역에서 일하는 아저씨한테 사정을 설명하니까,
반대편에서 오는 열차를 타고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해서..                  [퐁뚜와즈를 지나쳐서 잘못 내린 어느 역 -_-;]
간신히 pontoize 에 도착했다.-_-;;;;
                                                                                              
그곳에서 또..ㅠㅠ;;;;;
오베르 쉬와즈행 열차를 잘못 알고,
출발하지도 않는 열차에 앉아서 한 삼십분을 기다렸다.-_-;;
화장실이 급해서 열차 안의 화장실을 보니까 'occupied' 되어 있고.;;;
나중에 간신히 그 열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오베르 쉬와즈행 열차를 간.신.히 탈 수는 있었다.ㅡㅡ;;;

사실..
공항에서 꾸또네집 갈 때 말고는 처음 타보는 열차라서..
플랫폼이 뭔지.. 몇번 기차를 타야 하는지..
통.. 알아볼 수가 없어서 기차를 타는게 너무너무 어려웠다.ㅠㅠ;;;
(고 변명을 열심히 하고 있따.-_-;; 절대 내가 길치란 말은 안 하지.ㅡㅡ;;;)


아름다운 마을, 오베르 쉬와즈~!!

아.무.튼..

갖은 고생 끝에 고호의 마을에 도착했다.
아.. 도중에 그냥 파리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역에서부터 들었따. ^^

오베르 쉬와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마을이었다.
이곳 안내서에 따르면(한국어로 된 안내서도 있슴^^)
이곳은 고호 말고도 다른 여러명의 인상파 화가들이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따라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가 마치 인상파 화가라도 된 듯한 기분에, 수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고호의 동상도 보고..
고호가 그림을 그렸던 교회도 보고..
고호의 그림과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보려고 애를 썼으나.ㅡㅡ;
역시 그림과 사진의 차이인가..
그런 구도는 잡기가 힘들었다. ( '')
      

고호의 동상은...
상상보다 훨씬 빼짝 마르고 꽤좨좨한 한 사나이의 모습이었다.
저 빼빼마른 몸의 어디에 그런 열정이 숨어 있었을까..
저런 모습으로 이 마을을 돌아다녔겠지..

아, 그리고 어떤 한국인 언니를 고호 마을에서만 두번을 만났는데,
고호가 그린 교회에서 두번째 만났을 때는
그 언니가, 자기네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싸 주셨다면서
김밥을 먹으라고 나눠줘서 마침 배가 고팠던 나는 너무너무 고마웠다.ㅠ0ㅠ

마을을 둘래둘래 돌아다니면서..
옛날의 프랑스 어느 마을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곳의 집들은.. 지붕이 아름다웠는데..
거대한 지붕이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도 않고..
오랜 시간.. 오랜 세월.. 수많은 삶을 받쳐주던 지붕이니만큼..
그 낡은 색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고호도.. 다른 많은 화가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겠지..


작지만 향기로운 곳, 고호의 박물관..



고호의 박물관이 있어서 그곳에도 가보았는데..
고호의 박물관을 들어가는 입구는,
사진에도 보다시피 .. 아...
정말 아름다웠다..@@!!!
    

일단 정문을 들어가서 박물관 계단까지 가는 길의..
옆에 있는 벽이..
족히 몇미터는 될 듯한 그 벽 가득히 담쟁이 덩굴이 뒤덮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 덩굴을 비집고 자리잡은
고호의 그림들과 그에 대한 설명들..


그 담쟁이 덩굴의 수많은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정말 아름다운..
초록의 그 빛깔..
계단 옆에는, 포도주 병으로 보이는 병들을 거꾸로 꽂아서..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연상시키게 하는 조형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의 손잡이는 약간 녹이 슨 듯.. 이끼가 덮여있는 느낌이 드는..
카키색계통의 연두색으로 은은히 채색되어 있고..
예전에 고호가 살았던 집이라는 박물관 또한
그다지 화려하거나 거대하게 해놓지 않고..
작고..
조용하고..
향기로운..
그런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어서, 왠지 더 고즈넉히 느껴졌다..
    

이곳, 오베르 쉬와즈에는 지금도 예술가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는데,
과연.. 고호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곳이 예술가들의 마을이라는 것이..
입구에서부터..
계단의 손잡이에서부터..
정원의 작은 조형물로부터..
구석구석 스며든 그들의 예술혼이..
심장 가득히 느껴졌다..ㅠㅠ..

고호의 박물관에서는..
고호에 관한 많은 책들을 팔고 있었고 엽서도 팔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일정 시간마다 틀어주는
고호에 관한 비디오를 그 위층에서 보여주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박물관 자체가 고호가 살았던 집이라서
비디오를 보러 가는 계단과.. 지나가는 방들..
이런것이 모두 예전 그대로의 것이다..

나는 독일인으로 보이는 부부와 같이 비디오를 보았는데,
계단을 올라갈때, 그 부부중 아저씨가
나보고 먼저 올라가라구.. 레이디 퍼스트.. 같은 머..
그런 손짓을 해주어서 괜히 기분이 좋았따.^^
히히. ㅡㅡ;

비디오의 내용은..
고호의 어릴적부터의 사진들도 보여주고..
머.. 그런 거였다.
고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
한 십오분 남짓 이었나?
아무튼..
그곳에서 엽서를 한장 사서 동생한테 편지를 썼다. ^-^
오베르 쉬와즈 마을에 있는 고호가 그린 교회의 그림이 있는 엽서였다..


아니, 이곳에 압생트 박물관이~!!

박물관을 돌아보고도,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오베르 쉬와즈 메뉴얼에 나와있는대로 여기저기 쭐래쭐래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으앗!!! 압생트 박물관 이란 곳을 발견했다!! +_+

압생트라는 것은!!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보면 랭보와 베를렌이 항상 마시는
초록색 술로..
잔 위에 칼을 올려놓고 그 위에 얼음 같은걸 올려놓고..
그 위로 술을 따르는..
뭐 그런 술인데..

실제로 랭보도 이 술을 즐겨 마셨고,
고호와 고갱도 이 술을 즐겨 마셨으며..
그 누구냐.. 마네 였나? 누군가가 '압생트'.. 라는 제목으로 그림도 그렸지.

정보에 따르면 압생트는 담배나 마약보다
훨씬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 시중에 돌아다니는 압생트는 그것을 몇십배 희석시킨 거라고 한다.
왜냐면 당시 마시던 압생트는 지금 판매가 금지 되었다나?

암튼..
압생트라는 술은..
랭보와 고호가 파리에 있던 시절..(같은 시기이다.)
그 때 파리에 있는 예술을 한다는 작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마셔 보았을 독한 술..
정도라고 나는 알고 있다. ^^


나의 랭보에 대한 과도한 집념 때문에..
언젠가 압생트도 오리지날로 꼭 한번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 압생트 박물관이 있는 거다!! ㅠ0ㅠ
너무너무 설레여서..
나는 곧장 압생트 박물관으로 달려갔다. +_+
가는 길에..
집 앞에 꽃을 심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한명은 서양인 한명은 동양인 이었는데..
내가 웃어주니까 둘이 씨익~ 웃어주면서 봉쥬~ 해준다.
히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하면서 찾아간 압생트 박물관은
'Closed' 되어 있었다. ㅠ..ㅠ
규모로 보아, 개인 주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거 같은데..
열려 있었으면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을 것을..
너무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해서 나의 압생트 시식은 또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는가.ㅠㅠ;;


고호와 테오가 잠들어 있는 곳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호와 그의 동생 테오가 묻혀 있는 무덤을 보기 위해 그들의 무덤으로 갔다.

아까 교회 앞에서 만났던 그 언니 말이,
이 마을 뒤로 올라가보면..
탁.. 트인 밀밭이 있다던데...
정말 조금 올라가 보니..
탁 트인.. 시원한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고호는 이런 바람을 맞으며.. 이곳에서.. 이 밀밭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겠지..

그 밀밭을 조금 더 가자 그 옆에 옛 묘지가 있었다.
그곳의 구석 즈음에, 고호와 테오의 무덤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이런 곳에 묻히고 싶다..' 는 생각을..
나는 그곳에서 처음 했다.
시원하게 탁 트인 언덕 위에..
가만히 서 있으면 밀밭으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스쳐가고..
아래편으로는 아름다운 오베르 쉬와즈의 정경이..
멀리 까지 펼쳐진다..
내가 죽으면..
정말 이런 곳에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호와 달팽이..


고호와 테오의 무덤 앞에는.. 먼지 이름 모르겠지만..
암튼 풀이 많이 있었다.
'저 밑에 그~유명한 반 고호가 묻혀 있는 거군..'
하고 생각을 할 때 쯔음..
고호의 무덤 앞의 그 풀 위에 한 마리의 달팽이가 기어가는걸 발견했다.

한 마리였는데..
뿔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천천히.. 그 커다란 잎파리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당대의 화가 반 고호는 이제 생을 다하고 이 풀잎의 뿌리 밑에서
검은 흙이 되어 있는데..
그 위에 돋아난 풀 위를..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이지만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

"살아있으면 움직여!!"
라던 cf 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리 유명하고 위대하고 정열적인 화가라도..
아무리 우리가 그를 기억한다고 해도..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지금 살아있다.
저 달팽이 처럼 나는 살아있다.
나는 지금 움직이고 있고,
내 삶은 시간의 흐름 위에서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저기 있는 반 고호는 시간의 흐름의 한 곳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나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갈 수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류시화의 시 한구절..
"봄비 속을 걷다.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 구절이 생각났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또다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 뺨을 스쳐갔다.

고호의 무덤을 뒤로 하고 역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무진장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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