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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모로코 여행기 02 : 내겐 늘 특별한 그곳, 세비야

Granada days/Viaje!

by priim 2013. 4. 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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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베니니를 닮은 가이드와 함께! 

 

호스텔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늘 비슷하다.

빵과 잼과 버터 그리고 오렌지 쥬스, 커피.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루를 시작하는 여행자에게 든든한 아침은 필수다.

 

아침을 먹고 호스텔 리셉션에 내려와 보니,  

조니뎁을 닮은 잘생긴 청년이 리셉션을 지키고 있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한 그 청년의 이름은 르난, 브라질리안이었다.

조니뎁을 닮은 르난에게 세비야에서 볼만한 곳과 맛있는 바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선뜻 지도에 표시까지 해주며,  

오전 11시에 트리운포 광장에 가면 공짜로 할 수 있는 워킹투어가 있다며 추천해 주었다.

 

나는 사실 세비야의 대성당이나 히랄다석탑 이런 유명한 것들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세비야가 그냥 좋았다.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길거리의 세비야가 좋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동기나 이유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세비야까지 왔고, 낮에 딱히 할 일도 없으니,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같은 방에 머물렀던 패트릭과 함께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는 꽤 많은 여행자들이 워킹투어를 함께하기 위해 모여 있었고,  

두 명의 가이드가 'Panchotour'라고 적힌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둘 중 남자가이드를 따라 워킹투어를 시작했다.

우리 가이드는 이탈리아인으로 마치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배우처럼,  

익살맞은 말투와 연기로 세비야의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그의 가이드를 따라 보았던 곳 중 인상적이었던 곳은, 강가에서 보았던 높은 빌딩.

사실 세비야는 이전에 히랄다 석탑과 카테드랄 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였는데,  

이 도시에 히랄다보다 높은 어느 빌딩이 건설되면서,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도시전체에 대한 문화재 지정이 취소 되었고,  

지금은 히랄다와 카테드랄만이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라고 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빌딩이 건설되다가  

자금부족으로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라는 것.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빌딩을 세울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하는 큰 아쉬움이  

여행자인 나에게조차 절절히 느껴졌다.

 

 

또 인상적이었던 곳은 역시 스페인 광장.

그라나다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의 세비야 사진 속에 보면 늘 등장하는  

'그라나다' 팻말이 적인 작은 밴치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스페인 광장에는 나무와 건물 하나하나까지 세계의 곳곳의 모습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스페인의 각 도시들의 이름과 각각의 도시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유명한 그림을  

도자기 장식으로 꾸며놓은 각각의 벤치 들이었다.

세비야에서 만나는 그라나다는 왜 이리 반갑던지.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그림은 보압딜이 크리스챤들에게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열쇠를 넘겨주는 유명한 그림이었다.

그라나다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비야에 와보니 그라나다가 이미 나에게 많이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워킹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어느 담배공장이었다.

그 담배공장은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카르멘에 대한 설명을 위해 즉석에서 짧막한 역할극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어쩌다보니 내가 카르멘 역을 하게 되었다.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카르멘이 프랑스 군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 프랑스 군인이 전쟁에 나간 사이 카르멘은 또다시 투우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이를 본 프랑스 군인이 카르멘을 죽인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아주 간단한 내용 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카르멘의 내용을 알게 되고나서 보니 새삼 담배공장이 새롭게 느껴진달까.

어쨌든 참으로 탁월한 가이드 였다. 

 

 

투어가 끝난 후 약간의 팁을 준 후,  

가이드와 함께 판쵸투어의 아지트라는 바로 갔다.

점심도 먹을 겸 오늘 있을 유로2010 결승을 어디서 볼 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겸.

 

우리 가이드는 이탈리아인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결승을 세비야에서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광장으로 가서 마음껏 응원할 꺼라고 들떠 있었다.  

 

세비야 사람들이 축구를 보기 위해 다함께 모이는 장소는 Plaza de la Encarnacion,  

즉 엔까르나씨온 광장 이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같이 응원을 한다고 하니,  

이따가 그곳에서 축구를 보자고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카테드랄로 향했다.

 

워킹투어 후 한창 뜨거운 2~3시에 밖을 돌아다니는 것에 이미 익숙하지 않은 나는  

호스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씨에스타는 이미 내 생활리듬의 한 자리를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스페인의 가장 더운 안달루시아,  

그 중에서도 가장 더운 세비야에서 오후 2~3시에,  

아무리 실내 카테드랄이라도 밖을 돌아다니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다.  

시원한 호스텔에서 땡볕아래 달구어진 살들을 달래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휴식을 취한 후  

그래도 세비야에 왔는데, 두 번이나 왔는데,  

히랄다를 못 보고 가는 게 아쉬워서 카테드랄로 향했다.

 

 


히랄다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예전 모스크 였던 곳에 증축을 해서 만든 카테드랄이다.

히랄다는 아마 이곳이 이슬람 세력에 있을 때 알라신을 향한 기도의 시간을 알리는 종탑이었을 것이다.

 

히랄다를 올라가기 위해 올라야 할 계단이 몇 개일까? 답은 0개.

 

가이드의 말로는 이 탑을 지을 당시,  

탑 위로 걸어올라가기 힘들었던 사제들이(왕이었는지 사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탑을 오르는 길 전체를 램프, 즉 경사로로 만들어서  

편안하게 나귀를 타고 오르고 내리고 했었다고 한다.

 

그 옛날 그들은 나귀를 타고 편안히 올랐겠지만,  

그 옛날 나귀들이 걸었던 곳을 똑같이 걸어올라가야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역시나 꼭대기까지 오르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첨탑을 오르는 램프와 그 옆으로 뽕뽕 뚫린 창문으로 보이는 세비야의 오후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역시 꼭대기까지 오르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탑의 꼭대기에 오르자 멋진 세비야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나 그 아름다운 전경 보다도  

머리 위 이곳 저곳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수많은 종들이 나를 압도했다.

 

이 종소리들이 세비야의 전체로 울려퍼지고,  

매일 이곳에 나귀를 타고 올라 아마도 코란을 암송했을(잘 모르지만 아마도) 사제, 혹은 왕을 상상해 보았다.

아름답고 찬란한 히랄다 석탑과 그곳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세비야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마음속 깊은 곳에 우뚝 서 세비야의 자부심으로 빛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안달루시아 오후의 뜨겁지만 참 아름다운 햇살이 구석구석 스며들며  

히랄다의 꼭대기에 오른 여행자들을 비추었다.

 

캐나다에서 온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비야의 햇살과 히랄다 석탑의 높고 넓은 시야는 여행자의 마음을 이유없이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런 곳에서는 잠시 걱정거리는 접어두고 그냥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껴야 한다.

 

그때,  

아주 오래되어 마치 영원히 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수많은 종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알리는 종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시끌시끌했던 첨탑 꼭대기의 여행자들 모두가 머리 위의 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종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유럽 종의 종소리는 우리네 종소리와는 다르다.

나는 우리네 종의 묵직한 울림을 좋아한다.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비록 지금은 녹음된 것을 들어야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소리이다.

하지만 우리네와 다른 유럽의 종소리 또한 나는 좋아한다.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내가 살고있는 집에서는,

저녁무렵 어느 시간이 되면 일제히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서쪽 하늘이 거실에서 보이고,  

파리떼 처럼 분주하게 그라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보이고,

저녁 종이 칠 무렵의 평화로운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풍경이,  

내가 유럽의 종소리에 대해 가지게 된 최초의 기억이다.

 

세비야의 히랄다 첨탑 위에서 종소리를 들을 때도 그 풍경이 스쳐갔다.

또한 늘 마음속에 울려퍼지는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도 스쳐갔다.

 

언젠가 매일매일 히랄다의 종소리를 들으며,  

들을 때마다 신에 대한 감사와 소망을 기원했을 그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한 여행자가 아름다운 히랄다 첨탑에 올라  

세비야의 전경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종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일상에 혹은 그들의 인생에 울려퍼졌을  

그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종소리 너머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의 세비야가 보이는 듯했다.

 

히랄다를 내려오니 어느 새 축구를 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서둘러 아까 가이드가 일러 준 광장으로 향했다.





유로컵 2012 결승을 세비야노들과 함께~! 

 

그날은 마침 유로컵 2012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결승에 오를 두 팀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4년마다 열린다는 유로컵의 결승,  

그것도 경제가 안좋은 시기에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이라 그런지,  

세비야 곳곳에 스페인 국기 색깔에 맞춰 코스튬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광장에 다다르자, 광장에 모여 응원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세비야, 아니 스페인 전체가 이 순간 모두 한 마음이리라,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스페인에 머무르고 있는 나와 같은 여행자들까지도!

단, 이탈리아인이 아니라면. ^^;

 

그 광장에는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거대한 목조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구조물 아래 광장이 있는데,  

그 광장에 올라가기 위해 넓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매우고,  

광장 주변도 인파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과연 들어갈 수 있을런지, 광장에 들어가더라도 키 큰 장정들 뒤에서  

축구를 볼 수나 있으련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온 김에 긴 줄의 제일 끝으로 가서 줄을 섰다.  

 

동양 여자 혼자, 줄을 서 있으니, 역시나 오며 가며 모든 이들의 관심 집중이었다.

아무리 여행자가 많은 세비야 라지만 축구 응원하자고 광장까지 온 사람들,  

특히 아시아 여자는 별로 없었다.

 

더더군다나  내 앞 뒤로 줄을 선 스페인 사람들은 거의 청소년들이었고,  

어느 나라든 청소년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아이들인지라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그때, 바로 뒤에 줄 서 있던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스페인 여자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혼자 왔냐, 어느 팀을 응원하냐 등등 질문이 쏟아졌고,  

당연히 스페인을 응원한다고 하니, 응원 아이템이 없는 나에게, 스페인 국기를 그려줄까? 하고 제안했다. 

 

우리 태극기는 그리기가 힘들어서, 스티커처럼 살에 대고, 문질러서 붙이지만,  

스페인 국기는 그리기가 쉬워서, 노란색과 빨간색 립스틱 같은것 두개만 있으면 쉽게 그릴 수 있고,  

줄을 따라 그런 아이템들을 파는 상인들도 많이 있었다.

 

고맙다며 흔쾌히 한쪽 볼에 스펭니 국기를 그리고 나자,  

전보다는 위화감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한층 더 여기있는 모든 이들과 동화된 느낌 이랄까.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잠시 후 광장이 다 찼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 달렸지만, 결국 광장에 올라가도 화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광장에서 함께 응원했어도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나 혼자였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스페인이 졌을 때 폭도로 변할지도 모를 흥분한 사람들이  

조금 겁나기도 했다.

 

 

광장에서 발걸음을 돌려 향한 곳은 호스텔 근처 작은 바였다. 

한쪽 벽에 우스꽝스러운 플라멩코 벽화가 그려진 그 바에는,  

웨이터를 포함한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TV 로 축구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마침 앉을 의자가 없어서 서서 보려고 하니,  

자리에 앉아있던 친절한 오빠가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여기서도 사람들이 어김없이 물어왔고,  

광장에서 소녀들이 그려준 스페인 국기를 보여주며 "스페인!" 이라고 하자  

박수까지 치며 환영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축구경기가 있을 때,  

외국인이 우리를 응원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고 반가운 것과 마찬가지일까.

 

 

세비야, 그곳에 가면 언제나.. 

 

어쨌든, 그날 밤 스페인은 역시나 엄청 잘 해 주어서 4:0 이라는 스코어로 우승을 했고,  

덕분에 나는 전반이 끝나고 어느 신사분이 사주신 맥주 한 잔까지 얻어먹고,  

경기가 끝난 후에 바 안에서 응원하던 모두와 함께 흥분해서 사진까지 찍으며  

좋은 기분으로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대로 잠들기는 뭔가 아쉬워서,  

호스텔 로비에 있던 그리스 친구와 함께,  

유로컵 우승을 거머쥔 흥분으로 가득찬 세비야 거리로 달려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고,  

광장 한가운데 동상에는 머리 꼭대기까지 사람들로 가득차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그 흥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올라갔을 때 처럼 아찔한 기쁨이 나에게까지 가득 전해져 왔다! 

 



 

세비야, 이곳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준다.

두번째로 찾은 세비야에서의 마지막밤이 2012 유로컵 우승과 함께 지나고 있었다.

언젠가 기억속에 남겨진 낭만적인 세비야의 골목 위에,  

오늘 이 흥분으로 가득한 열기가 넘치는 거리의 모습 또한 더해지겠지.

 

그리고 내일은 드디어 모로코로 간다!

 

마라케쉬 숙소 말고는, 아무런 정보도 준비도 없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 설레는 맘으로  

세비야 호스텔 도미토리 2층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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