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점점 나이들어가면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낯설어진다.
가능하면 숨기고, 감추고, 삼키는 것이 털어내고, 쏟아내고, 드러내는 것 보다 성숙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그리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절대, 털어내고, 쏟아내고, 드러내는 방법과 그것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것은, 이러한 내 소중한 털어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나는 행복한 춤을 춘다.
실제로 스윙을 배우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나의 삶 자체가,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모두 행복한 고민이고, 행복한 시간들이라서, 조금 멀리서 내 삶을 스스로 바라보자면, 나는 춤을 추며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따뜻한 아침 햇살에 몸을 녹이고, 따뜻한 빵을 구워 꿀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전에, 잠깐 짬을 내어 이렇게 블로그에 글까지 쓰는, 이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제는 오랜만에 영화관에도 같다. 영화는 엄청 대단하지는 않았어도, 꽤 멋진 영화였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사람도 그러했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행복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행복하다.
예전에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때, 내 화분에 꽃이 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아직 꽃이 필 만큼 성장하지 않은 화분이었는데, 내 친구의 화분에서는 꽃이 피기 시작해서, 왜 내 화분에는 꽃이 피지 않는지 내심 속상해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내가 이 어려운 시기를 마침내 넘기고 웃을 수 있을 때, 내 화분의 꽃도 같이 필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화분의 꽃이 조금 더 일찍 피긴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의 어려운 시기를 마칠 수 있었고, 활짝 핀 꽃처럼 내 마음도 활짝 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소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마냥, 피지도 않은 화분에 내 희망을 걸어야 했을 만큼 절박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화분의 꽃이 피면 예쁘고, 안 피어도 건강한 나뭇잎을 보며 웃을 수 있다. 화분에 비치는 햇살을 보며, 하루가 시작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내 삶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요즘 나는 춤을 춘다.
스윙, 그 중에도 린디 홉을 배우고 있다. 춤을 추면 어찌나 즐거운지. 다시 바이올린도 켜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우리집 메이트들은 음악을 꽤 좋아하고 잘 한다. 덕분에 마음이 내키면 우리는 함께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을 잼으로 연주할 수 있다.
늦게 피어나는 꽃처럼, 내 삶도 이제 꽃이 피기 시작했다.
늦게 피어나는 꽃이라고 더 활짝 피는 것도 아니다.
그 꽃도 피고 지고 또 피고, 다른 꽃들과 똑같다.
단, 한번 꽃이 피기 시작한 가지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느끼는 행복이 더욱 실감이 난다.
또다시 울고, 또다시 상처받고, 또다시 지치는 시간이 분명히 또 오겠지만,
이런 행복이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됬으므로, 나는 더욱 단단하게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밝음은 어둠보다 강하다.
오늘도 밝은 하루가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
| 둘 (0) | 2020.06.30 |
|---|---|
| 코로나, 그리고 일 (0) | 2020.03.24 |
| 템플 스테이. 그 후. (0) | 2019.11.20 |
| 나를 인정하는 과정 (0) | 2019.08.27 |
| 할 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일 (0) | 2019.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