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유난이야.
뭐 대단한 거라고.
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뭐 사실 그런 소리 좀 들으면서 살면 어때서,
그러고 보면 나는 남들을 참 신경쓰며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저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병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남에게 저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만은 아니다.
내 삶의 꽤 많은 부분에 이미 영향을 끼친 나의 병이
내 삶의 또다른 부분까지 지배하는 걸 나는 원하지 않는다.
적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적에게 집중하여 싸워 이기는 방법과, 적을 무시하며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 방법이 그것이다.
두번째 방법에 대해 그것이 과연 이기는 방법인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나의 병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나는 저 두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나의 병이라는 적에게 집중을 하면 할 수록 나는 이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병을 무시하고, 인생의 다른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일들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 타지, 스페인까지 온 것도 이러한 나의 결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의 병과 싸우기로 결심을 하면서, 나는 이전보다 더 내 인생의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모든 결정의 순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결정했다.
이것은 내가 나의 병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사실은 나의 병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결정에서도 내가 병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결코 헛된 노력이 아니었다.
이렇게 쓰면서도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문득 나의 병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현실을 깨닫게 될 때
저마다 이 병을 겪고 있는 정도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다수의 이 병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의 결과라든지, 이 병을 앓고있는 누군가의 안 좋은 소식이라든지,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섭고 두렵다.
그럴 때마다 문득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깨운다.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치 강박관념 처럼 그 생각을 되뇌이며, 위안을 삼는다.
그것은 마치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을 혼자 걸어갈 때와 같다.
겁이 많은 나는 그런 길을 걸어갈 때 두 주먹을 꼭 쥐고 걸어간다.
누군가 나타나면 주먹으로 갈겨버리겠어 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면, 키도 작고 힘도 그다지 세지 않은 나는, 아마도 금방 제압되어 버릴 확률이 훨씬 높겠지.
나의 병에 대한 나의 다짐도, 아무 의미없는 나의 솜주먹과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나의 병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있는 한
이 게임은 내가 이기는 게임이라는 걸 나는 안다.
사랑에 웃고, 이별에 울고, 꿈 앞에 좌절하고, 절망 속에 희망도 가지면서
이런 누구나의 삶에 더 열중해서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나는 점점 더 나의 병을 이기고 있다는 걸 안다.
얼마 전 어느 배우가 갑자기 사망을 했는데
그 배우의 사망 원인이 내가 앓고 있는 바로 그 병이라고 한다.
그 병으로 인해 어떻게 사망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황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나의 병에 대한 위험성을 늘 인식하고, 나에게 위험할 수 있는 행동들은 사전에 방지하며 살고 있는데,
그렇게 미리 대처해오던 그 어떤 상황에도 속하지 않는 이 상황이 조금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그 경우의 수는 매우 작다.
그리고 이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가 모두 같은 정도의 병을 앓고 있는 것도,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 병의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고 넓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배우의 사망과 나의 병을 연관짓는 것이 섣부르고 더욱 위험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확률이 조금 더 높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며, 내 삶을 정말 사랑했다는 흔적을 남겨놓고 싶어서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될 지도 모르니까.
뭐 대단한 거라고.
유난떨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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