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삶은 어차피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데,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그때의 나를 위해 변명을 해본다.
그때의 나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많이 힘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고,
그러나 나를 희생하면서 까지 버티고 싶지는 않았고,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이며 옳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내가 참아야, 내가 희생해야, 내가 버텨야 나오는 결과가
그 상황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면
그렇게 해서 나온 최선의 결과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내 안의 나에게 든 작은 멍이 점점 퍼지고 있는데.
최선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만족감과 행복이 내 멍을 치유할 수 있었을까.
아닌 것 같다.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아.
인생을 살아가며 내리는 수많은 결정이 있다.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의 결정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기준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끝의 끝의 끝까지 후회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을 예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그렇지 못할 때에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에 서야만 한다면
나는 그 순간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그 순간의 나에게 가장 솔직해져서
그 순간의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생각해보고
그 순간의 나의 마음에 결정을 맡긴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내린 결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결정을 내린 그 순간의 한없이 주관적이고 어쩌면 이기적인 나에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그 결정이 가져온 이 많은 책임들은 감당할 수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을 지나는 나'의 것이지
'시간이 흐른 후의 나'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그러나 아마도 비슷한 무게의 책임을 견뎌야 했을 거라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내가 내린 그 결정은
최선을 다해 온전히 그 순간을 살았고 아파하고 고뇌했던 그때의 나의 소중한 결정이라고.
대답한다.
다시 시간을 돌려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아마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거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이 만들어낸 견고하고 단단한 빛나는 결정체 이다.
그 모든 결정체가 모여서 그 누구의 그것과도 같지 않은
온전히 나만의 빛나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잘했고, 잘하고있고, 잘 할 것이다.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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