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는 모두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Barcelona days/una ventana

by priim 2026. 7. 15. 19:05

본문

우리. 여기서 우리란 사람들. 인류를 지칭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나고 자라고 살아온 곳의 문화와 관습을 담는 그릇이다.

뼈와 살로 만들어졌지만, 신체의 구성요소가 같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우리가 이 뼈와 살로 만들어진 그릇 안에 담아온 문화라는 내용물 때문이다. 

문화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구분되고 분류된다.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도일까.

그 중 아무래도 가장 보편적인 문화적 차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역시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이다. 

나는 스페인에 2012년 1월에 도착했으니 벌써 14년 7개월째 살고있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 거의 대부분을 살았다. 

스페인에서 이렇게 오래 살고 있어도, 내 안에 담기는 문화가 스페인 문화로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의 문화가 우리 안에 담기고 그 색채를 띠는 과정은 아마 대부분 우리의 성장기, 우리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바로 그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미 내 안에 담긴 문화는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게 좋다. 누구나 문화를 담으며 살고 있는데, 담긴 문화의 색채가 쉽게 휙휙 바뀌는 것은 사실 정체성과도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정체성이 휙휙 바뀌는건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안에 담긴 문화가 뚜렷이 '한국문화'라는 색채를 띠는 것이 나는 좋다. 

여행기를 쓸 때도, 다른 문화권을 바라볼 때도,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하나의 문화권을 대변하는 시선으로 쓴 글이 더 가치가 있다. 자신만의 가치관, 기준, 이런 것들의 많은 부분이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 영향을 주는 문화는 하나의 색채를 띠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암튼 그래서 내가 한국 문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도, 내가 한국문화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 어떤 문화도 완벽하지 않고,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다. 한국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스페인 문화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여기 '타지'에 이방인으로 살면서 나는 상당히 사회에 통합된 외국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히는 부분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이방인으로서의 숙명같은 것이고, 그건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그간의 비슷한 일들이 줄줄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러면서 '역시 여기 사람들은...' 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어쩔 수 없다 나는 한국문화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볼때 진짜 별로인 스페인 문화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까지 모두 포함하여 내가 이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살고 있다. 아마 한국에 오래 살고있는 스페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을 위한 문화와 나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런 곳이 있다면 아마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 마음 속 작은 아이가 살고있는 그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일 것인데, 굳이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지도 않다. 

다름을 마주하고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 여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들의 무례한 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가까운 사이일 수록 가끔 선을 넘는다 싶을 정도로 무례한 농담을 할 때가 있다. 아마 그들과 나 사이의 심리적 쿠션,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라고 하는 그 친밀함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농담까지 하도록 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도저히 그 농담을 웃어넘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웃어넘긴다. 이제는 여기 사람들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페인 문화를 담고 살아가는 사회이고, 이 사회에서 내 안에 담긴 한국 문화와 그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은 큰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냥 너그러운 외국인에서 까칠한 외국인이 될 뿐이다. 

 

한번은 내 스페인 친구들과 눈을 찢는 제스처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제스처가 인종차별 제스처라고,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런데 얘들은 그게 인종차별 제스처라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그냥 아시아사람들의 생김새를 따라하는거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해서 하는게 아닌데 이게 왜 인종차별이냐는 거다. 그러면서 이걸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시아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김새를 좋아하지 않고 서양인들 처럼 바꾸거 싶어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거다. 하.... 다시 생각해도 고구마 100개를 물없이 먹는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냥 아니다. 라고 했다. 코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한테 코를 높이는 시늉을 하고, 얼굴이 검은 사람한테 검둥이라고 하는 것이 그럼 너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냐. 게다가 이 눈찟는 제스처의 대상은 아시아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아니고 무엇이냐. 라고 말을 해도. 이미 내가 하는 말은 이 정도도 이해 못하는 까칠한 외국인의 재잘거림일 뿐이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개를 먹는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국에는 분명 보신탕 문화가 존재했고, 아마도 지금도 극소수이더라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전부 개를 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한 친구가 그런 농담을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했다. 농담. 저급한 농담이었는데, 하.... 거기서 기분 나쁘다고 정색을 한다거나, 그건 잘못된 농담이라고 이야기를 해봤자, 자기 농담에 정색한 까칠한 외국인이 될 뿐이어서, '야 그거 나 기분 나빴어. 그런 농담 하지마' 라고 지나가며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게 한 소리 한 거 말고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래도 집에 오는 내내 정말 기분이 나빴고, 가상의 적을 향해 열심히 마음 속으로 열변을 토하며 집에 왔다. 그게 기분 나빴던 이유는, 농담이 저급해서라기 보다는, 그 뒷면에, 내 안에 담긴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이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존중한다. 그런데 나를 존중한다면 내 안에 담긴 한국 문화도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카탈루냐 사람들과 카탈란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때 나는 상당히 감정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었다. 그들끼리 카탈란어를 이야기할 때 소외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뒷면에 더 많은 역사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아마 그때 내가 카탈란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했던 그 말들도, 여기 사람들에게는 문화에 대한 존중의 부족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타지 생활이 힘든 건 이런 순간들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런 순간들을 반추해 보면서 나는 더 너그럽고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나빴지만 까칠한 외국인으로 남지 않은 나의 인내심에 칭찬하고, 무엇이 기분 나빴는지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꼼꼼히 분석한 나의 철저함을 칭찬한다. 나는 내 안에 담긴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신들의 안에 담긴 문화들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타지에서 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성장이다.  

'Barcelona days > una venta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6. 여름. 다시 블로그.  (0) 2026.07.13
자기애  (0) 2021.08.03
쉬운 행복  (0) 2021.07.22
  (0) 2020.11.04
왜 일은 끝나지 않을까  (0) 2020.09.0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