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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투어 둘째 날

Granada days/Viaje!

by priim 2022. 7. 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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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좀 더 여유로웠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과도 서먹서먹한 느낌이 사라졌고, 마음도 느긋해졌다. 여전히 낯선 모로코의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간다. 찰흙이 꿀렁꿀렁이는 것 같은 암벽이 나타나고 얼마 안가서 차를 세우고 우리는 거대한 협곡으로 들어갔다. 웅장한 협곡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물가에 사람들이 한창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고, 친구,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한가한 여름날 협곡의 가족들이라서 였을까.

협곡에 발을 담그려고 같이 온 사람들과 걸어가는데,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내민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걸까? 해서 물어보니, 그게 아니라 같이 사진을 찍자는 거였다. ㅎㅎㅎㅎㅎ 모로코 깊은 곳에 숨어있는 협곡에서 아시아인을 볼 일이 많지는 않겠지. 그렇게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언니와 함께 사진을 찍고, 협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우리 그룹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스페인 커플이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 물놀이를 했다. 귀여운 커플이었다. 그들과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계곡 물놀이를 하고, 점심을 먹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사막 지역에 들어섰다. 사막이 가까워질 수록 풍경이 막막해졌다. 비가 내리다 말다 내리다 말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을 때는, 사막이 보여주는 끝없음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내가 만약 이런 곳에 살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 시선이 닿는 곳 안에는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거의 없고, 사람의 흔적인 아예 없다. 밤이 되면 어둠이 낮에는 태양만이 가득한 이 땅. 땅과 하늘 밖에 없는 이곳에서 내가 산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자마자 겁이 났다. 나는 왠만하면 새로운 것들에 모험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런 사막에 산다는 상상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사막 근처 가게에서 물을 샀다

. 1.5리터짜리 두 병을 각자 사야했다. 사막에서 물은 생명이고, 내 생명은 내가 챙겨야 한다. 모래 바람이 불어 눈 코 입으로 들어가니 두건이나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갔다. 말도 타본 적 없는 나는, 당연히 낙타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낙타에 오르고 낙타가 일어설 때 살짝 고꾸라질 뻔 했지만, 다행히 중심을 잘 잡아서 무사히 안착했다. 낙타몰이꾼이 줄을 잡아 낙타를 이끌어 주었다. 앞서 가는 낙타가 똥을 똑똑 싸면서 갔었는지, 그때 메모에 앞 낙타 똥 이라고 써져있다. ㅎㅎㅎㅎ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점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친구가 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어쨌든 내가 몰랐던 사람들과 내가 몰랐던 삶의 모습을 알게된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내 낙타를 끌어주는 낙타몰이꾼은 14살에서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모로코 소년 이었다. 낙타몰이꾼들은 모두 하늘색 전통복장을 입고 있었다. 사방천지를 둘러보아도 방향이나 위치를 가늠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잘도 그 넓은 사막에서 길을 찾아갔다. 물론 우리는 과학 시간에, 하늘의 별과, 태양 그림자의 각도로 시간과 방향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지만, 막상 아무것도 없는 사막 안에서,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밝은 하늘 아래에서, 도무지 이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발자국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막연히 이쪽으로 몇 걸음, 저쪽으로 몇 걸음.. 이렇게 걷는 걸까? 내 낙타를 끌어주는 소년은 말이 없었다. 이 친구는 학교는 다니는 걸까. 아니면 가업으로 낙타몰이를 이어받아 하고 있는 걸까. 말이 없으니 알 길이 없지만, 눈이 참 맑은 소년이었다. 낙타를 끌고 가다가 힘들면 아무 말 없이 낙타를 세워두고 누워서 쉬기도 하는, 여유로운 낙타몰이꾼이었다. 

낙타가 캠프에 도착했을 때, 캠프 옆에 듄이 있었고, 캐나다에서 온 나이든 커플이 모델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샌드보드를 타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그란 모양으로 여러개의 텐트가 쳐져 있었고, 낙타몰이꾼들이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저녁이 정말 정말 맛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낙타몰이꾼들과 우리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스페인 친구가 가져온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도 하고, 안무가를 꿈꾸는 친구는 춤도 추면서... 아일랜드에서 온 커플 중 서커스를 한다는 여자친구는 형광공을 가지고 묘기도 보여주면서... 모닥불 주변에서 정말 꿈 같은 사막의 밤을 맞이했다. 

저녁을 먹고 각자 잠자리를 준비했다. 텐트 안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고, 텐트 밖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전에 듄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옆에는 다른 그룹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인지 칠레인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인가보다. 여행하면서 종종 느끼는 건, 어딜가든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제일 크고 말이 제일 많다는 것. 가장 사교성이 넘쳐서, 어딜가든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것. ㅎㅎㅎㅎ 아르헨티나에서 온 것 같은 그 사람들도 정말 말이 많고 흥이 많았다. 그들은 밤에 듄에 올라갔다. 낙타몰이꾼 중에는 좀 나이가 있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아저씨를 따라 나도 듄에 올랐다. 나트막해 보였는데, 모래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꽤 높고 힘들다. 낑낑대며 간신히 듄의 위에 올랐을 때... 그 풍경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사막에 가면 하늘 가득한 별을 보고 싶었는데, 그날은 보름달이 떠 있어서 별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듄에서 내려다보는 사막의 구석 구석까지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는 너무나 부드러워, 바닷물보다 포근하다. 달빛이 내리쬐는 끝없이 펼쳐진 넘실대는 사막의 모습은, 은색 비단을 끝없이 깔아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은색 비단은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 고요하게 흔들리며... 고요하고 부드러운 밤의 사막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포근했다. 그때, 종아리까지 모래에 잠긴 내 두 발에 진동이 느껴지며 '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웅....' 낙타몰이꾼 아저씨는 이 소리가 사막의 노래라고 했다. 그 소리는 사막이 부르는 노래소리였다. 숲에 가면 들리는 숲의 소리, 바다에 가면 들리는 바다의 소리가 있다면, 사막에 가면 들리는 사막의 소리는... 밤에 듄에서 보름달 아래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다. 

나는 늘 사막에 가면 밤하늘이 가득한 별을 보면서 자고 싶었기 때문에, 탠트 밖 매트위에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달이 너무 밝아 별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잊지 못할 사막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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