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사색의 정원, 까사 데 샤피즈(Casa de Chapiz)
까르멘 데 빅토리아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보이는 저 아름다운 정원에도 사람들이 들어가던데,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 걸까. 하고 친구와 생각을 하다가 결국
그곳이 방문이 금지된 곳인 줄 알고 포기를 했었다. 그리고나서 언제였던가. 5월의 어느 오후, 그날도 다른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문득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물어 물어 찾아낸 결과, 그곳도 마찬가지로
까르멘 데 빅토리아 처럼 벨을 누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냈다!
까사 데 샤피즈, 지혜의 집 정도가
되려나. 이곳은 두명의 무어인 학자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들이 학생들을 위해 책을 모아 놓고, 아마 강연도 했을 소위 말하면
학당 이었으려나. 지금도 이곳에는 도서관이 있고, 책을 빌려갈 수는 없지만, 원하는 경우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 갈 수는 있다.
까사 데 샤피즈는 까르멘 데 빅토리아에 올라갔던 같은 길, c/Chapiz 의 우측에 위치해 있다.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사크로몬테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로 들어가는 모서리에서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첫번째 문이 바로 까사 데
샤피즈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용기를 내어 벨을 눌러보자. 이곳은 저녁 6시 이후에는 출입할 수 없으니 너무 늦으면 들어갈 수
없다.
문이 열리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 제일 먼저 좌측에 있는 정갈한 알베르게와 깨끗하게 피어있는 연꽃, 그 아래
작은 물고기들과 고요한 분위기의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깨끗한 알베르게의 물에 비친 처마의 단정한 모습이 마치
내가 좋아하는 영주의 소수서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멋부리지 않고 정갈한 건물들과 계곡, 그리고 그 건너편 암벽에 씌여진 붉은
글씨.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단정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를 나는 참 좋아한다. 아마 이곳도 학자들이 학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라서인지 문득 문득 소수서원을 연상시키는 고요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까사 데 샤피즈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택을 돌아 옆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거대한 정원이다.
까
사 데 샤피즈의 알베르게와 저택을 둘러보고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화려하게 치장을 하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단장한 드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는 까사 데 샤피즈의 정원보다 약간 낮은 지대에 위치한 알바이신 주택들의
연갈색 지붕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나란히 줄지어 펼쳐진 연갈색 지붕의 파도 위로 정원의 벤치에 걸터앉아 앞쪽을 바라보면,
헤네랄리페와 알람브라가 언제나 처럼 우리를 반겨주고, 무엇보다 그 드넓고 고요한 정원은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그 사이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여왕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차곡 차곡 덮여있는 연갈색
지붕의 파도들은 마치 읽다 만 책들을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나란히 그어진 다섯 줄의 오선지 악보 같기도 한 것이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이 비밀스러운 정원의 이 지붕들과 더불어 도시락을 챙겨와 책 한권을 읽으며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까르멘의 정원들은 알바이신의 지형적 특성 상 경사가 심한 지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좋은 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정원을 꾸미고, 그렇기 때문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느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정원이 펼쳐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높은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하는 것도 아리까리 한
것이, 알바이신의 높은 지대에 가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을 내려가야 정원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알바이신이라는 마을에 까르멘을 꾸밀 때, 알람브라에서 바라보는 알바이신의 풍경도 고려하여 옆 집 혹은 같은 고도에 위치한 집들
간의 어느 정도의 줄맞춤을 유지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곳의 길들이 아름답고 걷고
싶어지는 길이 된 이유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통일성 있고 아름다운 돌바닥과 길과 접하는 담벼락 혹은 외벽의 바닥으로부터 1 미터
정도, 혹은 1.2 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길의 통일성 유지를 위해 외벽의 다른 부분과는 조금 다른 장식을 하고, 그런 장식들은
옆집과의 통일성도 많은 부분 고려했기 때문에, 길을 걷고 있으면,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이라는 공간이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길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으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 같다.
Los Momentos de la Casa de Chap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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