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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다..

Barcelona days/Viaje!

by priim 2014. 2. 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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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온지 벌써 5개월.

한 학기가 지났다.  

마지막 과제를 마무리 하고 나는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두었던 라이언 에어 티켓을 손에 쥐고 로마로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긴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두 도시를 가기로 했다.

그렇게 볼 것이 많다던 로마, 현대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 중 하나인 런던.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그 여행을 하며 느꼈던 것들의 시간의 순서와는 크게 상관 없는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러니까 이제 아피아 가도를 걷자..

 

로마, 마지막에서 두번째 날.

총 여덟밤 일정의 긴 로마 여행에서 로마를 여행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날.

남들 다 가는 로마 시내의 왼만한 유적지는 모두 가 보았지만, 하루 하루 여행이 계속될 수록 뭔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다.

혼자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라기에는, 그 이전의 혼자 여행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그 허전함이 유독 이번 여행에서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여행하는 장소가 대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 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 그 만남 중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대화가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그 장소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비장소라고 하는 것 같다. 로마에서 나는 그 오래된 유적지 사이를 다니며, 지적인 욕망은 채울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그러한 비장소들 사이를 거닐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론가 이동한다. 누군가는 왼쪽으로,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그리고 그 중간에서 스쳐지나가는 그 만남을 우리는 만남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만남같지 않은 만남이 가득한 대도시를 여행하면서 조금은 지쳐있었다.

 

혼자 여행하기에 늘 혼자이지만, 정말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로마의 마지막 여행 목적지는 로마 최초의 길이라는 아피아 가도 였다.  

 


우연히 마주친 그 계단 앞에서... 

 

그 지하철 역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로마를 여행하면서 거의 최초로 센트럴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역에서 내렸다.  

로마에 도착한 뒤 날씨가 계속 우중충 했었는데, 그 날은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 였는지, 기대도 하지 않은 낯선 역에서 만난 멋진 건물들 때문이었는지,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아침햇살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 역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아피아 가도가 나오지만, 아피아 가도를 향하기 전에 눈 앞에 보이는 고대 로마의 성벽을 향해 걸어보기로 했다.  

 

성벽의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고 그 곁의 작은 문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벽 이라는 것이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이 성벽은 분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방어를 위해 만들어 졌고, 그렇기에 이곳과 저곳을 분리하거나 차단하지 않는다. 성벽 사이로 지나다니는 차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로 막힘없이 흘러 지금에 이른 수천년의 세월이 그것을 이야기해준다.  

 

그 성벽을 지나면 성당이 하나 있고, 그 성당의 옆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르기 위해 밟았던 계단이 모셔져 있는 곳이 있다.  

나 는 누군가 종교가 무어냐고 물을 때 마다 언젠가는 날라리 기독교도, 가족은 불교,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종교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굳이 구분하자면 비종교인 이지만, 오래되어 윤이 날 정도로 낡은 서른 몇 개의 계단과, 그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왠지 모를 쿵쾅거림이 가슴 속 깊이 느껴졌다. 예수님이 오르셨다는 계단은 무릎으로밖에 오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옆에 난 계단을 따라 한칸 한칸 올라 보았다.  

 

이 한 걸음 한 걸음을 오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 한 걸음 한 걸음을 오르며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욕심이 있기에 그러하며, 나 자신을 희생할 만한 가치를 남에게서 발견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 고민이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던 그분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계단을 올랐을까. 그로 인해 그분이 겪었던 고통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만큼 가치있는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아피아 가도 위에 서다.. 

 

그곳을 나와 아피아 가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길 위에는 마트가 없다고 들었으니, 가는 길에 귤 한봉지와 피자 한 조각, 그리고 쵸코바 한개를 사서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넣고 걷는다.  

참 고마운 아침 햇살 아래 상큼한 귤 맛이 일품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로마 변두리 길거리이지만, 아피아가도를 향해 걷는 그 거리에서 나는 비로소, 로마를 떠나기 하루 전, 내가 찾던 로마의 진짜 모습을 만난 듯 하다.  

여행을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걷는다는 것이 사실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름값' 이라고 해야 하나, 굳이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던 유명한 곳들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번 쯤은 그 발걸음에 자유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 길에서는 그 길 나름대로 가치있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기분 좋게 길을 걷다보니 어느 새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거리가 나타난다. 이놈의 날씨가 또 흐려지려고 한다.  

비가 오는 건 걱정하지 않지만, 비가 오면 늘 따라오는 천둥 번개가 나는 참 무섭다.  

어릴 때는 전혀 이런걸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 주책없이 천둥 번개가 무서워졌다.  

큰 소리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의 번개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주 변에 건물이 별로 없고, 인도가 점점 좁아지는 황량한 길에서 번개가 치면 더더욱 무서울 텐데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할 무렵 눈 앞에 다리가 나타났다. 인도라고는 한 사람이 간신히 건널 수 있을 정도의 다리로, 이 날씨에 이 다리를 내가 건널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분의 일 쯤 건너다가 되돌아가서 다리 아랫길로 빠지기로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그래피티가 가득한 다리 아랫길로 걸어갔다. 지도 상으로는 이 근처에 아피아 가도의 시작점이 있다고 했으니 어디엔가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내려간 그 좁은 길의 끝에, 거짓말처럼 아피아 가도가 펼쳐져 있었다.  

물론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돌길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아피아 가도에 도착했다.

 

아 피아 가도는 걸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길은 아니었다. 인도가 따로 있지도 않았고, 차들도 쌩쌩 달리는, 말 그대로 지금도 쓰이고 있는 간선도로 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오면 아피아 가도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아서 아피아 가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냥 어딘가를 걷고 싶었고, 그 길은 내 앞에 펼쳐져 있었으며, 호젓이 걷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의 발자국, 도미네 쿼바디스.  

 

그러다 아피아 가도 초입에 있는 쿼바디스 성당을 만났다.

그곳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던 자리라고 한다.  

그러니 그때 예수님이 '나는 네가 버리고 떠나는 로마로 간다' 라고 했다던가. 그래서 다시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을 당했고,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는 잘 모른다. 어제 밤 호스텔에서 찾아본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 작은 성당의 바닥돌에 찍혀있는, 예수님의 발자국이라는 발자국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물었던 베드로는 정말로 그게 궁금해서 물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 질문은 주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는 미리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고민하는 이유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가치를 더 중요히 여기느냐가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진짜 모습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내 발보다 조금 더 큰, 차가운 돌에 찍힌 그 발자국 뒤에 서서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그리고 다시 쿼바디스 성당을 나와 아피아 가도를 걷는다.

지금 당장은 이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니까.

 



나의 물음, 그에 대한 아피아 가도의 대답! 

 

아피아 가도를 걷다 보면 두 개의 카타콤이 나온다.  

카타콤은 크리스챤들이 박해를 받았던 시절 지하에 숨어서 기도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 크리스쳔들의 시체를 보관했던 곳이라고 알고 있다.

카타콤은 성지순례로 오는 사람들도 많은 곳이지만 입장료가 있어서 나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번째 나온 카타콤을 찾아갔다가 의외의 소득으로, 아피아 가도를 따라 나 있는 걷기 좋은 산책로를 발견했다!

그 길은 차가 쌩쌩 달리는 아피아 가도에서 한켠 들어간 곳에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로, 알고보니 그 길은 쿼바디스 성당으로부터 이어지고있는 길이었다.  

지나다니는 차들의 위험을 감수하며 걷던 아피아가도를 벗어나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걸었더니, 주변에 로마의 유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굳이 유적지들을 보기 위해서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눈으로만 감상하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 현대적인 건물이 하나도 없는 그 길 위에 로마 유적지 사이에 둘러쌓여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길 건너 빨간 벽으로 된 오래된 집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를 하는가 보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있자니,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이 2014년의 아피아 가도인지, 1940년의 아피아 가도인지, 고대 로마 시대의 아피아 가도인지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이대로 걷다 보면 전쟁에서 돌아오는 의기양양한 로마 전사들을 만날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흐려지고 벌써 시간이 3시 가까이 되어 이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까 걸어왔던 걷기 좋은 길로 계속 걸어갔다. 차가 씽씽 달리는 아피아 가도는 사실 걷기 좋은 길은 아니었다.  

넓은 초원이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그 길은 너무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걷다보니 오리인지 거위인지 하얀 새 몇 마리와 닭 몇 마리를 방목해서 키우는 농가가 보였다.  

그 풍경이 너무너무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라 한동안 매료되어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일순간 오리들이 나를 경계했지만, 이내 경계를 풀고 식사에 몰두한다. 귀엽다. ㅋㅋㅋ

 

조금 더 걷다보니 개 한 마리가 주인을 따라 산책을 나왔는지, 근처에서 키우는 개인지 모르겠지만, 신나게 초원을 뛰어노는 게 보인다.  

꼬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리면서 신이나서 풀밭을 뛰어가는데, 나는 그 뛰어노는 개의 뒷모습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주여. 나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 뛰어노는 개에게서 찾았다!

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 내 앞에 놓인 이 길을,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 속에서 열심히 즐겁게, 꼬리를 치며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뛰어다니는 저 개 처럼, 신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그렇게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그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것도, 아무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다시 걷는 발걸음이 왠지 힘차고 신이 났다!  

나에게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엄청나게 흔들어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아피아 가도의 산책으로 나는 로마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 했다.

아 쉬운 마음에 로마에 와서 제일 맛있었던 작은 피자집에 다시 가서 꿈에도 잊지 못할 브로콜리피자를 다시 한 조각 먹고, 호스텔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엊그제 들렸던 산탄젤로 성이 보인다. 저 성의 야경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보여주네. 하며 로마에게 안녕을 고한다.  

 


여행의 즐거움 

 

길다면 길었던 로마의 일정 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아피아 가도 산책을 제일 먼저 써 보았다.  

그 길은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 처럼 정돈이 되어있는 길도 아니었고, 그 길의 끝까지 갔던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나 어느 순간은 아무 조건 없이 어딘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가 나에게는 그 순간 이었고, 그때 내 앞에 나있었던 그 길 위에서 만난 쿼바디스, 오리, 신나게 뛰어놀며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얼룩무늬 개 까지 모두가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 들이다.  

주머니에 하나 남은 귤 하나를 만지작 거리며 그 잊지 못할 순간들과 마주쳤던 장면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언젠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바로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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