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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를 떠나다..

Granada days/Encanto

by priim 2013. 12. 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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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를 떠나기 전 일주일 간의 짧은 기록

 

지난 9월,

 

 

나는 드디어 원하던 공부를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 그라나다에 왔을 때부터 지금껏 목표는 오직 하나,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노력하고 원하던 것을 드디어 이루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내가 바르셀로나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던 그 날,  

내가 길다면 긴 그라나다의 생활을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고,

하지만 그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나의 그라나다와 함께 오롯이 나만의 자축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라나다는 지금도 그때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라나다에서 보냈던 1년 반 넘는 시간들이 언제나 늴리리야 신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서른을 넘은 나이였고, 이 나이에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포기한 채로  

오로지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번의 착오로 계획했던 시간보다 1년이 지체되어 그 도시에 머물게 되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정해져 있지 않고, 언제 끝날지, 혹은 언제 끝낼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 속에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그 긴 시간의 마침표를 찍고,  

그래도 기껏해야 새로이 한 걸음을 내딛게 된 그때,  

나는, 내가 그동안 견뎌왔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진심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그 웃음의 의미를,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직 덜 여문 내가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저마다의 시간을 하루 하루 지긋이 견뎌온 사람들만이 비로소 지을 수 있는 그 웃음은,  

아마 언젠가 누군가 시간과 경험을 통해 그 경험을 직접 해보게 된다면, 그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때의 나처럼.  

 


 

아익샤, 알바이신의 심장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나의 첫 자축일은 알바이신 산책으로 시작했다.  

그라나다를 언젠가는 떠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면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내 마음이 가장 먼저 가리키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내가 가장 먼저 사랑했던 이 도시의 나의 장소. 알바이신의 플라자 라르가.  

눈에 익은 웨이터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광장의 테이블에 앉아서 틴토 데 베라노를 주문했다.  

기분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아무 걱정이 없는 그때의 나는 틴토 데 베라노 한 잔에도 취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이다 싶어 틴토 데 베라노 한 잔을 더 주문하고, 맛있는 타파를 먹으며 광장에 언제나 그렇듯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참으로 특별한 공기를 가진 곳이다.  

많은 여행자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지만, 또한 많은 현지인들과 히피, 집시들이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의 분위기는 서로 적대적이지 않고, 그 모든 분위기가 어우러져 플라자 라르가만의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언제나 알바이신이 그라나다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라나다 전체를 어우르는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 서로 다른 이들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친절한 미소는,

이곳 알바이신의 골목 구석구석 광장 구석구석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누구나 이 도시에서는 객이 아닌 주가 된다.  

이곳은 언제나 너의 도시가 아니고, 그들의 도시도 아닌, 나의, 우리의 도시가 된다.  

이곳을 찾는 그 누구에게나. 언제나.

 

틴토 데 베라노 두 잔을 라르가 광장의 아익샤 에서 마시고 주문을 하려고 바에 갔다.   

그런데, 이런.. 흥분한 마음에 얼른 뛰어나오느라 집에서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

아익샤에서 우리집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고, 안면도 있는 사이라 이야기하고 갔다오면 되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돈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서러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뭔가.. 아익샤에서의 마지막 한 잔은 폼나게,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

새삼 내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이 나서였을까.  

꺼억꺼억 소리를 내가며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바에서 타파를 말고 계시던 사장 아저씨와 나와 안면이 있는 까마레로 아저씨가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어보시길래,  

사실은 내가 곧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익샤에서 한잔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 알고 보니 지갑을 놓고 왔다.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 괜찮아 괜찮아! 자 여기 한잔 더 먹고 타파도 한접시 먹고, 그만 울어~ 여기는 안달루시아야!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지~ 그게 바로 안달루시아와 알레마니아(독일)의 차이점이라니까! 하하하.." 하면서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독일 손님에게 우스개소리를 던지시면서,

틴토 데 베라노 한잔과 맛있는 타파 한 접시를 그냥 내 주신다. ㅠㅠ.......

 

나는 오랫동안 그때 아익샤에서 먹었던 마지막 틴토 데 베라노와 타파 한 접시가 잊혀지지 않는다.  

눈이 퉁퉁 부어서 끅 끅 거리며 울음을 그치고 딸꾹질을 해가며 마셨던 한 잔의 틴토 데 베라노.  

그 안에 담겨있는, 구만리 먼 곳에서 온 친구에게 가족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해주던 안달루시아,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아익샤 사람들...

왜 신이 나를 이곳에 이제껏 머물게 하셨는지, 나는 비로소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나의 글로벌한 '그라나다 사람들' 

 

그 다음 내가 향한 곳은,

이 도시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던 거리, Calle caldereria vieja  모로코 상인들이 모여있는 거리였다.  

떼떼리아 거리 라고도 불리는 이 거리는, 늘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던 고마운 하밋 아저씨와,

언제나 활기넘치게 인사를 해주며 안부를 물어주던 건강청년 핫산!

그리고 델렝구아 학원 옆의 늘 인자한 미소의 고마운 아저씨,  

배고프고 주머니 가벼울 때 언제나 찾아가서 뚝딱 해치웠던 케밥집 아저씨...

모두들 나를 가족처럼 여겨주고, 내 일 처럼 걱정해주던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이별에는 왜이리 눈물이 나던지...

특히 하밋 아저씨와는 몇번을 인사를 해도 자꾸 눈물이 났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일주일쯤 지나서 였던가, 문득 하밋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아직 정들지 않은 이 새로운 도시가 낯설기도 했던 그때, 그 전화 한통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꼭 하밋아저씨 처럼 누군가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늘 지나다니던 엘비라 거리의 코비란에 중국인 가족들도  

언제나 웃으면서 내게 인사를 해주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구정 인사에 초코우유 하나를 슬며시 쥐어주던 코비란 아주머니.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었다는 인사를 드리니 잘 된 일이라며 내 일 처럼 기뻐해 주시고,

바르셀로나 갈 때 먹으라면서 커다란 쵸코렛 하나를 손에 쥐어 주신다. ㅠㅠ....

 

내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살았던 이 도시가 이런 도시였다.  

이곳은 개인과 개인이 살아가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였다.  

어디서 왔던 무얼 하던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그 짧은 과정 속에서는.  

 






그라나다의 미소, 난과 에바 

 

다음 날은 난과 에바를 만났다.  

그 친구들은 그라나다에 도착한 후 첫 여름이 다가올 무렵, 벨기에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라나다 건축학도 자매인데,

둘 다 미인인데다가,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미소를 그라나다의 미소 라고 부른다.  

 

먼저 난과 난의 남자친구 하비를 만나러 레알레호로 향했다.  

그라나다라면 이미 구석구석 안 밟아본 곳이 없다는, 아마도 그라나디노 보다 더 잘 알거라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그날 그들을 만나러 들어갔던 어느 캐밥집 옆 건물은 처음 들어가 보는 곳이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노래방 처럼 룸으로 나뉘어져 있는 바 같은 곳이었는데, 우리가 올라간 곳은 그 건물의 옥상이었다.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는 그라나다의 하늘이, 레알레호의 바로 그 건물 위에서 너무너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와.... 아직도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그라나다를 처음 만나고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 나는 이 도시가 마치 보물지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냥 보아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지만, 직접 걸어가보고 찾아가보고 하나 하나 만나다 보면 숨겨놓은 보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는,

보물지도 같은 도시 그라나다.  

그런 도시를 떠나기 전 내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보물을 알게 되는 행운은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다!!!!

 

 

아마 그라나다의 그런 매력이, 이곳에 10년을 살았던 사람이든, 이곳에 10일을 산 사람이든  

 

이 도시를 '나의 도시'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라나다의 인연 

 

다음날은 이곳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그라나다 아가씨 모니카를 만났다.  

여름 내내 나는 포트폴리오 준비에 서류 준비를 했지만, 선뜻 준비하고 있다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됬냐는 질문을 듣기가 고녁스러웠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상 며칠 후 바르셀로나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땐 뭐가 그리 급했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인연이 끝은 아니니까. ^^

 

모니카는 작년 여름, 다니엘과 로빈과 한창 어울려 다닐 때 사귄 친구였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뜨겁고 신났던 한때를 함께 보낸 친구여서, 그 친구와는 왠지 헤어짐을 앞둔 아주 오래된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1년이지만, 그리고 함께했던 시간들도 그 여름 그리고 가을 무렵이 거의 다이지만,

우리는 그 언제보다도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언제고 그라나다가 그리워지게 된다면 바로 떠올릴 그 시간 속에 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모니카와 나는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인 아우텐티카 바에 가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눈 밑에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는 빛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지난 여름 싱싱하게 열려있던 야외 테라스의 청포도 가지를 바라보면서...

 

 

자스민이 필 무렵, 나를 위한 빠에야 파티! 

 

아마도 다음 날이 파티였던 것 같다.

내가 그라나다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어학원. 델렝구아.  

나에게는 가족같은 그곳 식구들이 나를 위한 고별 빠에야 파티를 준비해주었다.  

원장인 마놀로는 꼼꼼하면서도 늘 즐거운 친구다. 언제나 상냥하고 안 그런듯 보여도 학생들 하나 하나를 늘 챙겨준다.  

그 외에도, 잘생겨서 참 좋았던 분위기 있는 선생님 알바로,  

대화가 참 잘 통하고 지적인 매력이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의 선생님 하비에르,  

페넬로페 크루즈를 연상시키는 미모의 여선생님 멜로디,

그 외에 델렝구아를 통해 만났던 모든 친구들....

아마도 그들이 이곳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소중한 보물이리라.

 

마놀로는 종종 그날처럼 빠에야 파티를 열곤 했다.  

마놀로의 출신지가 빠에야의 본 고장이라는 발렌시아라서,  

언제나 커다란 팬에 엄청난 양의 빠에야를 만들고, 좁지만 낭만이 가득한 학원 테라자에서,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바이신의 오래된 지붕 사이로, 웃고 떠들며 밤을 지새곤 했다.  

 


늘 당신들이 지금처럼 행복하길 바래요, 프랑크와 옐레 

 

그날은 나의 고별 파티라서 지금은 학원에 다니지 않지만 그라나다 근교에 살고 있는 내 친구들도 왔다.  

프랑크와 옐레. 그들은 네델란드에서 온 커플이다.  

그라나다 근교의 알푸하라 어느 마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지붕없는 차에 나를 태워가서 집 구경을 시켜주었던 기억이 난다!

파란 수영장 옆에 레몬나무 두 그루와 오렌지 나무 두 그루가 있고,  

수영장 아래로 거대한 정원이 펼쳐져 있는 그들의 집은 정말 너무너무 그림같아서, 언제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그런 집이었다.

수영장이 보이는 식당의 창문 옆에 낡은 피아노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언젠가는 그 피아노 소리를 들으러, 다시 찾아가야지. ^^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고민할 때,  

프랑크와 옐레는 내가 그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던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 였다.  

먼 곳까지 와서 약한 모습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털어놓기도 뭐하고, 혼자 끌어안고 있기도 힘들 때,  

진지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나를 응원해 주고, 내 등을 두드려 주었던 사람들이다.

 

언제나 마음좋은 그 웃음이 늘 보기좋았던 그들 커플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들의 인연을 놓지 않아야 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 

 






에스꼬르띠! 불레리아의 마지막 밤 

 

신나게 먹고, 마시고, 몇몇 멤버들을 모아 우리는 사크로몬테로 갔다.  

나의 사크로몬테 아버지를 자처하시던 안토니오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릴겸 해서였다.

그날 새벽의 불레리아는 유난히 열정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흥에 겨워 나도 플라멩코 답지도 않은 춤을 끽끽 거리며 췄던 기억도 난다.  

마리화나를 허브 말린 것이라고 거짓말치고 냄새 맡아보라고 하던 짓궂은 아저씨들도 생각난다.  

본의아니게 냄새만 살짝 맡아본 마리화나는 역시 똥냄새 였다. 이런 걸 왜 하는지...  

알바이신 골목을 거닐면 늘 매케하게 풍기던 마리화나향도 이제는 조금 그리울까.

안토니오 아저씨와 마리 여사는 바르셀로나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고 하니, 너무 잘 된 일 아니냐며 기뻐해주신다!

나의 집시 친구들. 사랑하는 사크로몬테도 이제는 내 마음속에 담아야 겠지.

 

새벽 3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졸린 눈을 가누며, 끝까지 함께해준 마놀로는,  

그 와중에도 길에 피어있는 자스민을 하나 꺾어다가 내 머리에 꽂아주면서,

자스민이 필 무렵 써니는 그라나다를 떠났다.. 라고 멋진 말을 해준다. 

 








 


그 날의 노을, 그리고 알바이신의 미소 

 

불레리아 바로 윗 동굴집에 이사를 왔다는 하비에르의 집들이는 아마 나는 못 보게 되겠지.  

 

새벽, 불레리아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조용한 새벽의 다로강변을 거닐면서  

그날 저녁 나의 콤파녜라 레베카와 함께 올랐던 산 미겔 알토 전망대의 아름다운 노을을 생각했다.  

늘 친언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고 채찍질도 해주던 레베카와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골라 억지로 빙 돌아서 갔던 산 미겔 알토의 노을은 그날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경제위기의 시대에는 미소도 혁명이다.' 라고 아무렇게나 휘갈겨 있던 어느 담벼락.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씌어져 있던 싯구 같은 문장들을 나는 좋아했다.  

이곳 그라나다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던져 버리고 싶을 아픈 젊음들도 참 많기에....

담벼락 이곳 저곳의 낙서들 마저 이곳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스마트 도시, 메트로폴리탄의 시대에 그라나다는 그런 곳이었다.  

여전히 오래되고, 여전히 촌스럽지만, 여전히 멋스러운...

그래서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시작과 끝을 함께! 바바라, 제프 그리고 케이루나! 

 

그라나다를 떠나 바르셀로나에서 1주일 간 머물며 숙소를 구하고,

급한 일정에 챙기지 못했던 짐을 찾으러 다시 그라나다에 내려왔던 주말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바바라와 제프 부부를 만났다.

 

나는 바바라가 참 좋다. 그들 부부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참 좋다.  

아마 언제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참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다. 그리고 삶을 사랑한다.  

지난 7월 몸도 맘도 많이 아팠던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때,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언덕 중 하나가 또 그들이었다.

파란 눈의 빨간 머리 바바라는 마치 오랫동안 나를 알아왔던 친한 언니처럼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내 인생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침 그들의 첫 아기가 한달 쯤 전에 태어나서, 지난주에는 아직 바바라의 몸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인사를 못했었는데,

이제라도 얼굴을 보고 가니 너무 다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떠나고 이주일 정도 후에 그들도 그라나다의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바바라와 제프의 예쁜 첫 딸 케이루나는 아직 그들의 고양이 알라나 보다도 작은 핏덩이 였는데,

꼼지락 꼼지락 거리는 게 너무 귀여웠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출산 축하선물로 살 만한 가게가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어 복숭아를 사갔는데, 고맙게도 너무 좋아해 주었다.  

 

그들의 부모님들이 오시기로 한 날이라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짧지만, 서로의 행복을 위한 큰 축복이 담긴 대화를 나눈 채 우리는 헤어졌다.  

 

바바라와 나는 그라나다에 거의 같은 시기부터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거의 같은 시기에 떠나게 되니...

이도 참 재미있는 인연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분명,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그 페이지 속에 서로의 모습을 언제나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  

늘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

 

바바라와 제프의 집을 나와 걸어가는 알바이신의 골목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줏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멀리서 보니 마치 하트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라나다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로 사랑을 전하고 이별을 고했다.

 







그때의 나에게. 

 

내가 적지도 않은 이 나이에 낯선 땅에 이 도시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처음 그라나다 공항에 발을 내딛어 얼떨떨해 있던 그때의 나에게 알려주면,

그 때의 나는 그 말을 믿을까.

 

그리고 너는 그 도시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머물게 되고, 생각보다 아름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되지만,

네가 평생 잊지 못할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평생 꿈꾸게 될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며,

자스민 꽃이 여기 저기 피어있는 어느 날,  

깊은 아쉬움을 남긴 채, 크나큰 만족감 또한 담아서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거라는 걸.

그 때의 나에게 알려주면, 아마 나는 믿지 않겠지.  

 

하지만 분명히 나는 그랬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와 세상 모든 것의 의지가 모여 흐르는 어떤 거대한 의지의 우주적인 흐름이 나를 이끌어 이곳으로 온 결과일 것이다.

 

 

 

 

 

나는 그라나다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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